재벌개혁 “지금 적기다” 시행령부터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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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재벌개혁 “지금 적기다” 시행령부터 개정하라 여소야대 정치지형 고려하면 국회입법과는 별개로 추진할 때다

기사입력2017-08-21 17:4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10대재벌로의 ‘돈 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코스피 상장사 533곳(금융업 제외) 가운데, 10대그룹 63개 계열사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연결 재무제표 기준)은 45조9901억원으로 전년 동기(31조5344억원)대비 45.8% 급증했다. 분석대상인 코스피 상장사의 전체 순이익(60조6868억원) 가운데 10대그룹 비중은 75.8%로 전년 동기(64.7%)대비 11.1%p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산업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10대재벌로의 경제력집중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이란 점이다. ‘수출 증가 → 생산 및 투자 증가 → 고용 증가 → 소비 증가’로 순환하는 수출-내수 연계성이 사실상 끊어진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특히 수출 주력업종인 반도체와 석유제품의 경우 장치산업 특성에 따라 수출이 증가해도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부가가치 및 고용 창출여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 1월부터 7개월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중인 수출에 따른 과실은, 즉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재벌대기업으로의 돈 쏠림 현상만 가속화될 뿐, 중소기업과 가계에 돌아가는 몫은 늘어나지 않는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에서 ‘대중소기업이 상생하고 수출-내수간 균형을 갖춘 선순환 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전제는 재벌개혁을 포함한 경제민주화다. 최근 정부가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재벌개혁이란 근본적인 과제에는 여전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여소야대에 따라 재벌개혁 입법이 지연되는 탓이다. 여소야대 정치지형이 2020년 총선까지 계속된다는 점에서 국회입법과는 별개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같은 요구를 반영,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전 김상조 위원장이 이끌었던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최근 ‘시행령 등 하위규정 개정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을 발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9일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관련법 등의 시행령 및 그 하부규정 개정만으로도 상당 수준의 경제민주화 실행(이) 가능하다”며 “국회 여건과 과거 입법 수준을 감안할 때, 시행령 개정을 통한 경제민주화(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6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재벌총수들. 위 왼쪽부터 손경식 CJ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겸 GS그룹 회장. ©중기이코노미

김상조 위원장도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재벌개혁 관련 법) 개정안이 나와 있어 국회 상임위 내에 TF를 구성하는 등 법을 제·개정하는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이것이 마무리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밝혀, 국회입법과는 별도의 실행 가능한 재벌개혁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재벌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회계투명성 제고, 일감몰아주기 규제, 하도급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재벌개혁에는 필연적으로 반대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재벌대기업과 한몸인 보수야당과 일부 언론은 정부가 진행중인 ‘사소한’ 수준의 개혁에도 이유불문하고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다.

재벌개혁은 지금까지 새정부가 추진했던 개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반대와 저항이 예상되는 메가톤급 화약고라는 점에서 국민적 지지와 엄호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80%를 넘나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와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한 지금이 바로, 재벌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최고의 적기인 셈이다. 김 위원장이 약속한대로 국회입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벌개혁의 고삐를 틀어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말이다.

재벌기업의 관행화된 불법행위중 하나가 일감몰아주기다. 이는 소액주주의 부를 총수일가에 이전시키며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불법·편법으로 2.3세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대표적인 적폐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의 기준은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정해져 있는데, 현행 대주주 지분요건을 현행 30%에서 20%로 강화함으로써 규제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 이외에도 경제개혁연대는 대주주 지분을 계산함에 있어 대주주 직접 보유지분 이외 계열사를 통한 간접지분도 포함하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제시했다.

경제개혁연대가 제안한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에 따르면,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소수주주 지분요건 완화대상 법인 기준’을 현행 자본금 1000억원이상 상장기업에서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 이렇게 되면 규제대상 기업은 지난해말 기준 151개에서 336개로 두배이상 늘어난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권 행사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기업의 수를 늘림으로써, 이들 기업의 지배주주 및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외 상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외이사 비율 및 감사위원회 선임 등과 관련된 기준을 자산총액 1조원(현행 2조원)으로 하향한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2016년 기준으로 유가증권 상장회사중 2조원 이상의 회사는 149개사, 1조원 이상의 회사는 219개로 유가증권 시장에서는 70개사가 추가된다. 사외이사 과반수 선임과 감사위원회 등의 의무화 대상 회사 범위를 확대해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제안한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은 ▲이사회 독립성 강화 ▲주주권 강화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정보공개 강화 ▲회계·감사의 투명성 강화 ▲일감몰아주기 등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 강화 ▲중소기업 보호 ▲기타 사항 등 7개 주제를 중심으로 한 36개의 과제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주제 하나하나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자, 비정상화된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한 규제들이다. 달궈졌을 때 쇠를 두드려야 한다. 기회를 놓쳐 이미 식어버린 쇠를 두들겨 봐야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