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원시인류가 그릇(器)을 빚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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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신석기시대 원시인류가 그릇(器)을 빚게 된 사연 중국, 물고기를 그린 채색토기 vs 한반도, 빗살무늬 토기

기사입력2018-06-18 14:24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신석기시대 인류가 많은 동물 가운데 개고기를 가장 손쉽게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오늘날과 같은 ‘동물애호시대’에 껄끄러워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직접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맹수들과 같이 날카로운 이빨을 타고난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덩치가 엄청 큰 매머드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같이 육체적으로 더 강인했던 다른 인류들까지 마구 잡아먹었다고 한다.

불을 이용해서 맛나게 요리해 먹을 줄 알았던 덕분에 고기의 고단백질을 섭취해 두뇌가 좋아져서 인류문명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고, 동물은 물론이고 다른 인류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다 보니 오늘날 지구에는 호모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만큼 잔인한 동물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인류가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증거는 ‘개고기를 구워먹었다’는 뜻의 연(然)자 이외에도 ‘그릇’이란 의미의 기(器)자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이 글자를 뜯어서 풀어보면,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구(口)자 4개가 한 마리의 개(犬)를 둘러싼 형상이다. 기(器)자를 개가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시끄러운 모양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풀이가 그릇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여기기는 어렵다. 그것보다 기(器)자는 여러 사람이 개고기를 가운데 두고 나누어 먹는 것이거나, ‘개고기를 담아 두는 것’이라고 보는게 훨씬 타당하다.

신석기시대에 여자들과 아이들이 동굴에 남아 정착생활을 했고, 소박한 의미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이전 구석기시대 인류는 정착하지 않고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수렵생활을 했다. 사냥한 동물을 다 먹고 나면, 다른 곳으로 먹거리를 찾아 나섰던 구석기시대 인류에게 그릇과 같은 도구는 필요 없었다. 그런데 신석기시대에는 농사를 지어 먹고, 남은 먹거리가 생겨 이제는 그것을 보관해 둘 필요가 생겼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면 인류는 돌멩이를 깨거나 갈아 동물을 사냥하거나, 잡은 고기를 썰어 먹을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것 이외에도, 물에 젖었던 흙이 햇볕에 마르거나 불 곁에 두면 다시 굳어서 무언가를 담아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류가 토기(土器)를 만들게 된 계기다.

중국 서안(西安) 반파(半頗)유적지에서 발굴된 채색토기에는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많다.<사진=문승용박사>

약 200만년 전 구석기시대, 인류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든 이래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두 번째 도구가 개발됐다. 이전까지는 아마도 먹고 남은 고기는 나무에 걸쳐두던지 아니면 높은 곳에 얹혀 두어 보관했을 것이다. 그것들을 꺼내 다시 식사할 때면 먹던 고기를 손에 쥐고 계속 뜯어먹었든지 아니면 맨바닥에 각자 놓고 먹었으리라. 만약 이때 그릇이 있었으면 좀 더 우아하고 여유롭게 고기를 먹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로 먹다 남은 고기를 보관하거나 담아 먹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처럼 인류의 문명사에서 어떤 도구가 새로이 만들어진 계기는 어떤 쓸모가 생기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필요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문명인의 눈에는 그것들이 너무나도 간단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당시 새로운 도구가 만들어지기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의아할 따름이다.

아주 먼 옛날 우리 민족이 이동해온 경로가 중국인의 조상들과 달랐음을 보여주는 증거중 하나가 신석기시대 그릇이다. 중국 서안(西安)에는 신석기시대 중국인들이 이동해 와서 살았던 흔적과 유물이 발견된 반파(半坡)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토기는 색깔이 다양하게 칠해졌다고 해서 채도(彩陶) 또는 채색 토기라 한다. 그에 비하여 우리나라와 만주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다. 빗살무늬는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가지런히 나 있다. 어째서 토기의 겉면에 빗살무늬를 그었을까?

그냥 밋밋하게 아무런 무늬나 장식도 없다면 그 역시 볼품이 없을 것인데, 중국인은 겉면에 색깔을 칠했고 한반도로 온 조상들은 빗살무늬를 그어 예쁜 토기를 만들었다. 이렇듯 신석기시대 우리 조상이 빗살무늬 토기를 개발한 반면 중국인은 채색토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양 지역에 정주했던 인류의 의식과 생활양식 또한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빗살무늬, 그것은 단지 예쁘게 보이려고만 했던게 아니라 그릇을 들고 이동할 때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오늘날 발견되는 중국의 채색토기에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 것이 많다. 어째서 중국인들은 토기에 물고기를 그려 넣은 것일까? 마치 스페인 알타미르(Altamira) 동굴에서 소가 많이 그려진 것처럼, 물고기를 숭배대상으로 여기거나, 물고기를 잡아먹고 싶었던 당시 중국인들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중국은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지역이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중국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는 서안은 중국의 서부 안쪽이다. 당시 원시인류들은 아마도 바다를 한번도 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니,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을 수 있다.

중국 상점이나 가정에는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물고기 장식을 많이 볼 수 있다.<사진=문승용박사>

오늘날에도 중국인들은 물고기를 매우 상서롭게 여긴다. ‘물고기 어(魚)’자와 ‘남을 여(餘)’자가 우리말 발음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중국어에서 둘 다 ‘위(yu)’라고 발음한다. 중국인들은 이처럼 비슷한 발음이 나는 것을 동일시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상점이나 가정에 물고기 장식이나 그림이 걸려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물고기를 보면서 가정과 사회가 여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놓은 것이다.

중국을 가히 요리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이 생선회 같은 날고기를 그다지 먹지 않았다. 냉장고 같은 위생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중국경제가 발전하고 냉장설비를 갖춘 식당들이 많아지면서, 생선회나 초밥을 즐겨 먹는 인구가 늘었다고 한다. 우리가 즐겨먹는 연어가격이 오른 이유도 중국인들이 생선회를 먹기 시작하면서 국제어시장에서 연어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시장 규모가 얼마나 큰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