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상인을 천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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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예로부터 상인을 천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농경사회 유가 선비·지배권력자에게 장사는 눈엣가시였을 터

기사입력2018-08-01 16:08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고대 중국의 첫 번째 왕조국가라고 할 수 있는 ‘상(商)’나라는 왕조가 멸망해 왕족들이 떠돌아다니면서 생계수단으로 장사를 하게 되면서, 고대 중국에서 최초의 ‘상인(商人)’이 탄생하게 된다. 이처럼 상(商)자는 본디 장사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商)자는 술을 담는 그릇이 받침대 위에 놓인 모양을 그린 글자로서, 왕이 신하에게 상으로 내리는 상품이라는 뜻이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상인들을 ‘고운’ 시각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해 신분의 계층을 나누었다. 공부를 하는 선비, 농사를 짓는 농민, 기술자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장사를 하는 상인을 가장 낮은 단계로 구분해 그들을 천시했으니,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상인들이 나라를 잃거나 고향을 떠나 외지를 떠다니다 보면 의지할 것은 분명 돈이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속되게 쓰는 표현 가운데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돈이 살아가는데 참으로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 땅을 떠나서 어디를 가든지 간에 상인들이 악착같이 돈을 벌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시샘을 받아 배척당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해, 농업이 세상 정치의 근본이라 여겼었다. 물론 중국이 농경사회였던 것은 비교적 너른 농토에 풍부한 물을 확보할 수 있었던 자연환경이고,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 년(年)’자를 풀어보면, 한 남자가 벼 이삭을 어깨에 잔뜩 지고 있는 모양을 그린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중국에서는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것이 백성들 삶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가 ‘년(年)’자에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商)은 본래 술을 담는 그릇이 받침대 위에 놓인 모양의 글자로서, 왕이 신하에게 상으로 내리는 상품이라는 뜻이었다.<출처=한자연변오백례, 제공=문승용 박사>

하긴 곡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가정과 나라를 유지해 가는데 농사를 짓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지 먹고 살아야 하는 이유 이외에도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농사를 적극 장려했던 것은 돈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공자(孔子)의 유가(儒家)를 왕조시대의 이념으로 삼은 것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이 농경을 근간으로 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상업보다는 농업을 나라의 근간산업으로 삼는 것이 안정된 왕조의 통치를 보장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농민과 상인 가운데 어느 계층이 다스리기에 수월할까? 당연히 농민일 것이다. 농민들은 지배계급에 의해서 어느 정도 핍박을 받더라도 그냥 꾹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농토에 씨를 뿌려 놓고 가을에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것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아무리 자신들을 못살게 굴더라도 어지간해서는 그들의 농토를 버려두고 떠나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상인들은 자신들 생업의 근거가 토지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지배계급으로부터 조금이라도 핍박을 받거나 지배계급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재산을 챙겨서 언제든 떠나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상인들이 언제든 제 나라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말고도 자신들의 현재 재산상태를 비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웠을 것이다. 농민들 경우에는 그해의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누구나 곁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아무리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을 이룬다고 해도, 농민의 재산이라는 것이 쌓이고 쌓여서 지배계급을 위협할 정도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년(年)은 한 남자가 벼 이삭을 어깨에 잔뜩 지고 있는 모양을 그린 것처럼 농사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출처=한자연변오백례, 제공=문승용 박사>

그렇지만 장사하는 상인들은 수익이 두 배가 남는지 열 배가 남는지 남들이 알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상인들은 평상시에 손해를 보고 장사를 한다는 말을 흔히 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상인들의 이런 거짓말이 선의이든 악의이든 어찌되었거나 모든 일에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을 유난히 강조하는 유가(儒家)의 선비들이나 지배 권력자들에게 이윤을 추구하는 장사가 역시 그들의 이상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상업을 억제하기만 하고 오로지 농사만 짓고 살던 순수 농경사회는 아니었다. 당(唐)나라 때에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역과의 무역이 흥성했었고, 송(宋)나라 때에는 도자기, 비단, 차(茶) 등을 가지고 해상무역을 활발히 해 커다란 부를 이루기도 했었다.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해 동서간의 교역을 활발히 하던 원(元)나라에 이어서 명(明)나라 때에는 당시의 산업기반이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기 단계까지 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후로 중국은 북쪽으로는 만리장성을 쌓아 이민족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남쪽으로는 바다로 진출해 나아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 해금(海禁)정책을 폄으로써 외국과의 자유로운 무역을 막는 정책을 고수하는 등 서서히 고립돼 갔다. 그러는 동안 서구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신대륙으로 건너가 식민지를 건설해 노동력과 자본을 약탈해 근대산업 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지만, 중국은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안정된 왕조사회에 머물러 있다가 19세기에 들어서 서구 유럽의 여러 나라로부터 아편전쟁과 같은 치욕스러운 침탈을 받아 왕조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중국은 모두가 고르게 잘 먹고 잘 사는 사회주의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있으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모순에 얽혀 많은 진통을 겪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중국이 또 어떻게 대처해서 극복해 나갈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