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온라인 시스템을 시험 운용 중일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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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미국을 읽다 새로운 온라인 시스템을 시험 운용 중일 때는 Law Metaphor ①jury, trial, retainer, settle, plea, bail

기사입력2020-07-21 13:46

이창봉 객원 기자 (cblee@catholic.ac.kr) ㅣ다른기사보기

이창봉 교수(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미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엄격한 법치주의로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전통을 이어온 점이다.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미국이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나라가 된 중요한 이유가 바로 법치주의를 엄격히 지켜왔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갈등과 분쟁이 있을 때 그것을 법에 호소해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법률 제도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성격의 소송과 고소와 고발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 매우 익숙한 일이다. 이러한 익숙함이 그들의 언어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미국영어에는 유독 법(law) 관련 은유 확대 표현들이 발달돼 있다.

미국은 배심원(jury) 재판 제도를 두고 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한국 남자들의 병역 의무처럼 배심원 봉사가 시민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의무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배심원 재판과정 참여가 너무도 익숙한 경험이다. 미국 영어에는 배심원(jury) 관련 은유 확대 표현이 많이 발견된다. 그들은 일상에서 ‘The jury is (still) out on ~’ 이라는 표현을 잘 쓴다. 이 표현은 본래 배심원들이 어떤 사건(case)의 판결(verdict)에 이르지 못한 상황을 뜻하는데, 이 뜻이 은유 확대돼 일반적으로 어떤 일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하지 못한 상황을 묘사할 때 널리 쓴다.

예를 들어서 회사 홍보실에서 광고 일 관련 회의 중 다음과 같은 대화가 흔히 일어날 수 있다.

A: Are we proceeding with this advertisement?

B: The jury is still out on that. We want to seek more expert consultation.

영어로 재판을 ‘trial’이라고 한다. ‘on trial’의 말 그대로의 뜻은 본래 ‘재판 중’이라는 뜻인데, 이 뜻을 은유 확대해 어떤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나 제도 등이 ‘평가를 받는 중(being tested)’이라는 뜻으로 널리 쓴다.

예를 들어서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어느 대학에서 새로운 온라인 학생 지도 시스템을 시험 운용 중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A new online advising system for students is on trial in the university.

미국 법원은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엄격히 준수한다. 그들은 모든 사건의 재판에서 법정에서 피고(defendant)가 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죄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며(innocent until proven guilty), 죄를 입증하는 부담(burden of proof)이 철저히 원고(prosecutor, accuser) 측에 있다. 이것은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며, 무고한 사람이 벌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기본 인권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기에 미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대변하는 직업인 변호사들이 상당히 많다. 필자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텔레비전이나 신문 그리고 전화번호부 광고란에 변호사 광고가 즐비한 것을 보는 것은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영어로 재판을 ‘trial’이라고 하는데, ‘on trial’은 어떤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나 제도 등이 ‘평가를 받는 중(being tested)’이라는 뜻으로도 널리 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미국 사회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 영어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을 ‘retain a lawyer’라고 표현하며, 변호사와 계약할 때 자신의 사건(case)을 맡아서 일하기 전에 내는 착수금을 ‘retainer’라고 한다. 이 표현들은 은유 확대 표현은 아니지만, 변호사 같은 직업군 이외에 자유 계약자(freelancer)로 일하는 통역이나 회계 업무 같은 전문적인 서비스를 일정 기간 계약하는 경우에도 잘 쓰이므로 반드시 익혀 두어야 한다. 착수금과 시간 당 비용 등을 따져서 계약 협상을 하는 것을 ‘retainer agreement’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회사에서 통역사가 필요해서 자유 계약자로 일하는 어떤 통역사를 접촉했는데, 그녀가 지나치게 높은 착수금을 요구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Her hourly rate seems to be too high. We have to either revise the retainer agreement with her or contact another person.

민사소송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원고를 대변할 경우 소송에서 이기는 것이 일차 목표이지만, 피고 측과 절충과 협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동사 ‘settle’로 표현한다. 동사 ‘settle’의 본래 뜻이 어떤 곳에 정착한다는 의미이므로 일차적으로는 이 뜻이 법률 분야의 소송 맥락 속에서 은유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에서는 더욱 이 뜻이 확대돼 ‘settle for ~’ 표현은 ‘to accept in spite of incomplete satisfaction(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받아들이다)’의 뜻으로 잘 쓰인다.

예를 들어서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구했는데,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연봉이 적었지만 일단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It was my first job after college graduation. I decided to settle for a lower wage than I had expected.

형사소송의 경우 변호사의 궁극적인 역할은 피고를 무죄로 방어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유죄를 인정하되 최대한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검사 측과 양형 거래(plea bargain)를 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서 ‘plea’의 본래 뜻은 주로 형사 법정에서 피고 측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간곡히 항변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 뜻이 은유 확대되어서 ‘plea for ~’ 표현은 ‘~을 급하게 간청하다(urgent request)’의 뜻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서 어느 지역사회 신문에서, 병원에서 혈액이 부족해 급하게 시민들에게 헌혈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다음과 같은 머리기사 제목으로 내보낼 것이다.

Local hospitals send out a plea for blood-donors.

끝으로 미국 영어에서 매우 자주 쓰는 법 관련 은유 확대 표현을 하나 더 보자. 필자는 스포츠광이어서 미국 유학시절 스포츠 경기 중계를 텔레비전으로 보거나 스포츠 전문 라디오 방송(sports radio)을 들으면서 영어를 많이 익혔다. 경기 후 인터뷰 때 선수들이 ‘My teammates bailed me out in this game’이라고 말하는 것을 정말 자주 듣게 됐다. ‘bail’은 본래 형사 사건에서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으며 재판을 기다리는 피의자가 재판에 출석한다는 보증을 하기 위해 내는 보석금을 말한다. ‘bail ~ out’은 보석금을 내어서 일단 감옥에서 그 사람을 나오게 하는 상황을 뜻하는데, 이 뜻을 은유 확대해 일상에서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구해준다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