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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과오를 생각하는 장소

마야 린의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 

기사입력2020-03-29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미국 워싱턴 D.C의 국립공원 내셔널 몰(National Mall)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를 디자인한 사람은 그 당시 어리고 무명이었던 마야 잉 린(Maya Ying Lin, 1959~)이다. 그는 이 기념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실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인식하게 될지라도,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은 어차피 각 개인의 몫이다. 죽음은 결국 개인의 사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이 기념물의 내부 공간은 개인의 명상과 심판을 위해 마련된 조용한 장소이다.”

 

그는 이 기념비가 애국의 선전물이 되기보다는 각 개인이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 과오를 생각하는 장소가 되길 원했다.

 

상처를 치유하고, 전쟁에서 죽어간 개인을 기억하며

 

그가 이 기념비를 디자인할 수 있었던 것은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공모전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결된 이후, 1979년 처음으로 베트남 전쟁의 문제를 다룬 영화 디어 헌터(The Der Hunter)’가 상영됐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부상입고 훈장을 받았던 얀 C. 스크럭스(Jan C. Scruggs)는 이 영화를 본 후, 전쟁의 내상을 치유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서 참전용사기념비를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 참전용사기념기금(Vietnam Veterans Memorial Fund Inc., 19794)을 설립하고, 건립 기금과 대지를 마련했다.

 

방문객이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의 검은 화강암 벽에 새겨진 이름을 만지는 모습.<출처=gazette.com>

 

19808월에는 이 기금의 위원회가 응모에 제한 없는 기념비 설계 공모를 시작했다. 다만 몇 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다. 첫째,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작품이어야 한다. 둘째, 주변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셋째, 사망자 또는 실종자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넷째, 전쟁에 대한 정치적인 주장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1421점이 이 공모에 응모했고, 39점이 최종 심사에 올라갔다. 이 공모에서는 모든 응모작을 번호로만 표시해 응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처리했다. 최종적으로 당선된 디자인은 응모번호 1026번이었다. 그런데 당선자가 뜻밖에 21, 중국계 이민 2세 미국인, 여성, 예일대학교 건축과 4학년 학생, 마야 린이었다.

 

대중은 당선자가 유명한 건축가나 건축사 사무소가 아니라, 이름 없는 대학생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당선작이 발표되자 반대 여론은 예상보다 거세게 일었다. 이 기념비가 세워질 내셔널 몰에는 밝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거대한 기념물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기 때문에, 대중은 이와 비슷한 형태의 영웅적인 디자인을 기대했다.

 

그래서 기념비가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서 있지 않고, 지면 아래로 낮게 파묻혀 있는 단순하고 검은 형태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검게 째진 치욕의 상처라고 빈정거렸다. 어떻게 아시아인이, 그것도 21살밖에 안 된 애송이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모르는 여학생이 설계한 작품을 선정할 수 있느냐며 항의했다.

 

하지만 이 기념비를 처음으로 계획했던 얀 스크럭스를 비롯한 기금위원회는 마야 린의 당선작이 기념비에 대한 요구사항을 충족하고도 남을 정도라는 입장이었다. 반대 여론은 거셌고,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영향력 있는 상·하원 의원도 많았다. 하지만 스크럭스는 타협하지 않고 당선작을 꾸준히 밀고 나갔다. 반대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기념비 건립 과정에서 정치인의 참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입김을 이길 수 있었다.

 

이렇게 건립된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는 지면보다 낮게 패어 있어, 베트남 전쟁을 부끄러움의 상처로 느껴지게 했다. 과오를 인정하며 치유에 다가서게 한 것이다. 검은 화강암 벽은 현재와 과거를 하나로 합쳤다. 이 벽은 거울처럼 사람의 모습을 반사하고 있어 벽에 새겨진 죽은 사람의 이름 위로 살아 있는 사람을 함께 보게 된다. 아이들은 전쟁에서 죽은 아버지의 친구들과 한몸이 됐다. 전쟁에서 싸운 사람과 전쟁을 반대한 사람이 한몸이 되게 했다.

 

오늘도 사람들은 지면 아래로 내려가며 이 기념비를 어루만진다. 관념적인 전쟁을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목숨을 바친 한명 한명의 군인을 어루만진다. 우리는 전쟁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전투를 치렀던 한명 한명의 군인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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