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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만들지 못한 색채와 인간의 감성 담다

‘야수’가 된 화가의 아내…앙리 마티스㊦ 

기사입력2020-04-27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마티스는 왜 자신의 아내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로 요란스럽게 칠해놨을까?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 당시, 그러니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흐나 고갱, 세잔, 피카소 등 유명한 작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다. 인상주의, 야수주의, 신인상주의, 입체주의 등이 이 시기에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일까?

 

이런 변화가 갑자기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사진 기술의 발명 때문이다. 루이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1839년에 다게레오타이프(daguerréotype)라는 최초의 대중적인 사진 기술과 카메라를 발명했다. 그 후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사진 기술과 카메라는 더욱 발전하게 된다. 점점 인물과 풍경, 사물을 있는 그대로 찍는 게 쉬워졌다.

 

똑같이 그리는 것 의미 없어사진기술과 색채의 화가 마티스

 

그런데 사진 기술과 카메라의 발전은 화가들을 실직자 신세로 전락시켰다. 카메라가 나오기 이전에는 무언가를 똑같이 그리는 것이 화가의 몫이었다. 화가들은 인물과 풍경, 정물 등을 똑같이 그려주고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메라가 화가의 몫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마치 지금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이때부터 화가들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카메라가 하지 못하는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인상을 그리거나(인상주의), 앞면뿐만 아니라 옆면, 뒷면을 동시에 한 화면에 그리기도 하고(입체주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을 사용해 그림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야수주의). 화가들은 카메라가 못하는 표현을 찾아 나섰다.

 

‘모자를 쓴 여인’을 흑백으로 바꾼 이미지. 3차원의 입체감을 지닌 여인의 얼굴이 정확한 명암으로 표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컬러와 흑백 모드를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을 리 없는데, 자연스럽게 얼굴의 입체감이 표현돼 있다.
초창기 사진 기술은 컬러를 표현하지 못하고, 오로지 흑백사진만 가능했다. 그래서 화가들은 흑백사진 기술이 표현하지 못하는 색채에 집중하는 면모를 보인다. 또한 색채와 함께 그림만 가능한 과감한 붓질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을 실험했다.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이 바로 그런 작품 중 하나다.

 

그렇더라도 색채만 드러내면 되니까 보이는 대로 채색하면 될 텐데, 왜 마티스는 얼굴에는 초록색과 노란색을, 목에는 주황색과 황토색을, 검은색 드레스에 청록색과 파란색을, 배경은 화려한 여러 원색을 사용해 전혀 사실적이지 않은 색채와 표현의 그림을 그렸을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색채에는 각기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음악에서 소리를 보존하려고 애쓰듯, 화가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구성은 색채의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살리는 일이다.”

 

마티스는 각 색채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색채가 단순히 아내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색채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색채를 없애면 어떤 느낌일까? 이 작품을 흑백으로 바꾸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단지 컬러 그림을 흑백으로 바꿨을 뿐인데, 초록색이라서 이상했던 코나 창백해 보이는 얼굴, 너무 빨갛던 목 등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인다. 전체적인 그림의 명암도 입체감 있게 잘 표현된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당시 그림의 모델로 서 있던 아멜리 여사를 누군가가 카메라로 찍었다면, 그 흑백사진은 아마도 흑백으로 변환한 모자를 쓴 여인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할 것이다. 마티스가 명암의 변화를 몰라서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을 했던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마티스는 카메라가 하지 못하는 색채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새로운 예술을 개척해 나갔다. 아멜리 여사가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어땠을까? 당시에는 이 작품을 보고 실망했지만, 지금은 아마도 야수로 불리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한계는 벽이 아니라, 도약을 위한 구름판인지도 모른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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