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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적 러스킨 혹평과 보헤미안 휘슬러의 소송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기꾼이라 혹평받은 제임스 맥닐 휘슬러㊦ 

기사입력2021-04-21 10:3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회색과 검은색의 배합 제1은 크게 호평을 받았는데,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은 왜 혹평을 받게 된 걸까? 호평을 받은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 그림은 1877년 그로스버너 갤러리에서 전시한 8점 중 하나로, 이 전시에서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혹평을 받았다. 그중 가장 심하게 혹평을 받았던 작품이 바로 검은색과 금색의 야생곡이다. 가장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청교도적 러스킨과 보헤미안 휘슬러=회색과 검은색의 배합 제11871년 작으로 어머니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4년 뒤에 그린 검은색과 금색의 야생곡은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관람객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펀치(Punch)지에서는 작품의 위쪽은 안개로 뒤덮여 있고, 아래쪽은 잉크의 홍수다. 이 작품에는 대상이 없다라고 하며, 작품을 진흙탕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떨어지는 불꽃’, 1875, 목판 위에 유화, 60.3×46.4cm, 미국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소장.
그리고 앞서 밝혔듯이 존 러스킨은 이 그림을 물감 한 통을 사람들의 얼굴에 쏟아붓는 대가로 200기니를 요구하는그림이라고 월간지 포스 클라비게라(Fors Clavigera)에 혹평을 남겼다. 이에 자존심 상한 휘슬러는 러스킨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그림이 무엇을 표현한 건지는 법정 심문과정에서 분명해졌다. 법정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은 휘슬러는 이 그림이 크레몬 정원(Cremorne Garden)에서 있었던 불꽃놀이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설명을 듣고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검은색과 짙은 초록색이 두껍게 칠해져 있는 화면에 점점이 노란색이 뿌려진 이미지만 보고서는 불꽃놀이 장면인 것을 알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존 러스킨이 이 작품을 혹평한 이유는 단순히 그림의 추상적 표현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혹평한 주요 이유는 러스킨이 사기꾼처럼 행동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휘슬러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단 이틀을 사용했는데, 러스킨은 들어간 노동력에 비해 작품값이 터무니없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근면 성실한 노동만이 경제적 보상과 신의 구원을 가져온다는 청교도적 윤리관을 신봉하던 러스킨(원래 목사가 되려고 했었다)에게는 너무 쉽게 그린 그림에 너무 비싼 값을 제시한 휘슬러가 무척 못마땅했을 뿐만 아니라 사기꾼처럼 보였다.

 

하지만 휘슬러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자유로운 삶을 지향했던 휘슬러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옹호하며, 장인의 기교보다는 예술가의 감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 ‘회색과 검은색의 배합 제1번’, 1871, 캔버스 위에 유화, 144.3×162.4cm,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소장.

 

휘슬러가 러스킨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당시, 러스킨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고, 휘슬러는 이제 조금씩 인정받는 화가였다. 또한 러스킨은 59세로 부유했지만, 휘슬러는 44세로 나이도 어리고 가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법적 논쟁에서 러스킨이 승리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의 승리자는 휘슬러였다. 재판에서 내 그림값은 평생 작업하면서 얻은 지식을 기준으로 했다라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런데도 어쩌면 진정한 승리자는 러스킨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재판에 패소한 러스킨이 배상해야 할 액수는 겨우 1파딩(farthing)이었고, 소송을 위해 들어간 비용 때문에 휘슬러가 결국 파산했기 때문이다. 배상액 1파딩은 1/4페니에 해당하는 당시의 최소 화폐단위로, 비유하자면 한화로 1원 정도다. 그에 비해 소송을 위해 휘슬러가 사용한 비용은 너무 많았다.

 

결론적으로 휘슬러는 자존심을 지키고 1파딩을 얻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쓴 것이다. 그는 이듬해에 파산하고 만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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