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스타일은 특정문화에 들어가는 통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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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뉴욕에서 스타일은 특정문화에 들어가는 통행증 Life is pain.ting #51. 당신은 어떤 스타일입니까?④

기사입력2022-03-22 09:38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뉴욕 스타일이란 뉴요커들이 모양내고 ‘폼’ 잡는 방식이다. 뉴요커들이 어떻게 입고 어디서 무엇을 먹고 마시면서 어떻게 노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전략이다. 당연히 뉴요커 자신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에게 뉴요커로 살아가는 방식이 쿨하다고 보이는 방식이고 태도다.

외부인의 눈이나 관광객들에게 뉴요커는 하나의 이미지일지도 모르지만, 뉴욕 ‘원주민’들에게는 명확하게 내부적인 흐름이 있다. 소위 말하는 ‘트렌드’다. ‘스타일’처럼 누구도 딱히 무엇이 트렌드라고 말하지 못하지만 명확하게 있다. 뉴요커들이 모여 노는 곳에 가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어떤 스타일의 옷이 보기가 좋고 어떤 바나 식당에서 먹고 마시고, 어떤 클럽에서 춤을 추고 뭘 하면서 노는지 알 수가 있다.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우선 외부인들, 즉 트렌드를 모르는 사람들은 알 수 없도록 스타일은 흘러 다닌다.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로 관광객이 뉴욕 거리를 쏘다니면서 뉴요커들의 차림새나 행동을 아무리 쳐다봐도 하나의 공통된 패션 감각이나 트렌드를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모든 게 하나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보일 뿐이다.

뉴욕 스타일은 완벽하게 관광객의 눈을 피해서, 혹은 잡지나 영화나 인터넷에 알려진 뉴욕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곳에 존재한다. 처음부터 외부인들에게는 철저하게 숨겨진 곳에 존재한다. 트렌디한 부띠크 호텔이나 바에는 간판과 같은 표시가 전혀 없다. 관광객들은 바로 눈앞에서도 거기가 호텔인지 바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파라마운트 호텔이나 로얄튼 호텔은 그 입구에서도 호텔이라는 표시를 찾아볼 수가 없다. 가장 쿨하다고 알려진 ‘로터스’나 ‘아파트’ 같은 바도 입구가 어딘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예약한 후에.

물 좋은 클럽 테오나 스파 같은 곳은 철저하게 차림새로 판단해서 문을 열어준다. 대부분 이름 높은 식당에서도 예약 없이는 테이블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혹시 자리가 있어도 리셉셔니스트(Receptionist)가 옷차림새를 보고 결정한다. 식당 리셉셔니스트들처럼 뉴욕에서 매운 눈을 가진 권력자는 없다. 뉴욕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는 소문이 흘러 다닌다.

그러나 뉴요커는 그런 장소에 가기 위해 전략을 짜지 않는다. 스타일은 더 이상 어떤 장소에 걸맞은 옷차림이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인다는 그 자체가 스타일이 존재하는 모든 이유다. 우리가 빠져들고 싶은 무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약간의 준비가 필요한 법인데 하물며 남에게 나를 보여서 쿨하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를 해야 할까!

결국 스타일이란 자기를 남에게 드러내는 선택적인 과정이고 전략일 뿐이다. “실력과 아부는 평상시에 쌓아라”는 말처럼 스타일은 결국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과 모습을 모두 아울러 직접 보여준다. 설명하지 않는다. 보여줄 뿐이다. 뉴욕 스타일은 뉴욕 길거리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역사이자, 뉴요커 개개인이 경쟁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전시장이다.

그러나 길거리에서만 스타일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것은 아니다. 패션을 창조한다는 패션 하우스가 밀집한 미드 타운, 매디슨 애비뉴나 소호에서도 치열하긴 매 한가지다. 그러나 매디슨 애비뉴나 피프쓰 애비뉴는 뉴욕 스타일의 출발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달점이자 무덤이다. 마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나 모마(MoMa)가 예술품의 종착역이고 무덤이듯이.

스타일의 노골적인 각축장은 오히려 뉴욕 아방가르드 예술의 발상지인 다운타운, 특히 이스트 빌리지나 로우어 이스트 또는 리틀 이태리 북쪽 노리타(NoLiTa)지역이다. 젊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싼 가게세 때문에 그쪽으로 몰리고 동시에 적당히 돈을 번 젊고 감각 있는 뉴요커들이 오차드 가에 있는 ‘세븐’같은 작은 옷가게에 몰려든다. 유명한 빈티지 옷 전문점도 이 지역에 몰려있고, 디자이너가 직접 손님이 들고 온 옷을 손님과 상의하며 재단하는 장소도 이 지역에 있다.

매디슨 애비뉴를 주름잡는 스타일이 돈과 지위와 권력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면, 이 곳 다운타운에서는 감각과 에너지가 스타일을 결정한다. 그러나 미드타운의 스타일이 공적인 행사나 파크 애비뉴에 있는 호화 아파트에서 드러난다면, 다운타운 스타일은 길이나 클럽에서 드러난다. 그런 만큼 스타일이 미치는 효과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다. 다운타운 스타일이 북상해 매디슨 애비뉴 패션 스토어와 파크 애비뉴 아파트에서 재차 생산되고 스타일은 소비된다. 소위 뉴욕 스타일이란 게 여기서 전세계로 선보이고 파급된다. 런던도 아니고 파리도 아니고 밀라노도 아닌 뉴욕만의 스타일이 매디슨 애비뉴 의상실과 광고회사의 잡지나 방송매체를 통해 확산되면서 어느 순간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뉴욕 스타일은 탄생한다.

뉴욕 스타일은 잡스럽다. 그러나 잡스러움 그 자체는 순수하다. 잡한 것 자체가 순수한 것이다. 그 잡스러움은 끝없이 확장되고 동시에 한없이 뒤섞인다. 잡종이 순하게 인정받고 서로 폭발적으로 교배되는 초유의 공간이 이 좁은 섬 위에서 펼쳐진다.

뉴욕은 세상에서 가장 잡스러운 곳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오픈되어 있다. 전세계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뉴욕 주민의 40퍼센트 정도가 미국 밖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당연하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당연한 공간, 수백의 언어가 뒤섞이고, 옷을 아무리 모던하고 스타일리쉬하게 입어도, 수세기 전부터 전승되어온 민족의상을 입고 다녀도, 땟물에 젖은 잠뱅이를 입고 다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공간이다.

이렇게 근본도 없고 뿌리도 모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코스모스에서 사람을 판단할 유일한 기준은 겉치레다. 잡다한 인종과 종교, 언어가 혼재하는 곳에서는 외관이 인간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외관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언사는 폐쇄적이고 안정된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가치기준이다.

순도 100%의 잡스러움과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화학 반응이 뉴욕의 스타일을 결정한다. 그 스타일이 ‘멜팅 팟’이든 ‘사라다 볼’이든 뉴욕 스타일은 뉴욕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교배된 잡종들의 산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잡종의 세계나 카오스가 지배하는 세계일수록 순수에 대한 열망이나 질서에 대한 의지가 강한 법이다. 그 열망과 의지는 혼성교배의 산물이지만 그 기원을 부정한다. 동시에 열려있는 공간 속에서 스타일이나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분할해 나간다. 그래서 뉴욕은 그 무한한 개방성이나 관용성만큼이나 완벽하고 철저하게 차별적인 세계다. 미국이 가장 공공적이면서 평등한 듯이 보이지만 동시에 불평등의 극치고 극단인 장소다.

스타일이란 명백하게 열린사회에서 차별을 조직해 가고 차별을 가리는 의지다. 민주주의란 스타일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열린사회에서 차별은 문화적으로 구축된다. 뉴욕처럼 사회 클럽이나 인종 또는 종족 배타적인 모임이 활발한 곳도 없다. 끼리 문화가 철저하게 배타적으로 존재한다. 유서깊은 가게나 힙한 식당, 트렌디한 술집들 중에는 간판도 없는 곳이 많고 주소나 전화번호조차 감추는 집도 많다. 가게 전화번호가 잡지나 대중 매체에 알려지면 그 즉시 번호를 바꾸어 버리고, 관리하는 고객들을 위한 별도의 예약 번호를 준비하는 식당도 많다. 미국 내에서 뉴욕처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도 없지만, 그 관광객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곳도 드물다.

관광객이나 이방인이 실수로나 아니면 애를 써서 간판이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더라도 그 안에서 버티고 서비스를 받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엇을 마셔야 할지, 어떻게 주문해야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눈치를 보다간 쿨은 끝장난다. 비록 이방인으로 그 공간에 들어왔다 해도 적절하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어야 그나마 차별의 눈길을 피할 수 있다. 적절한 복장 그리고 적절한 태도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스타일만 좋으면 아무도 신상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놀고 즐기면 그만이다.

뉴욕에서 스타일은 특정한 문화에 들어가는 통행증이다. 동시에 뉴요커라는 신분증이다. 뉴욕 스타일을 통해서 사람들은 뉴요커의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뉴욕에서 스타일은 삶의 생존방식이고 운명이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도 스타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 스타일로부터의 탈출은 또다른 스타일로 귀결된다. 스타일은 시간처럼 우리 인생에 붙어있다. 뉴욕에서만 스타일이 운명일리야 없겠지만, 스타일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뉴욕에서 가장 명확한 사회 계급의 표식이 된다. 그것은 제복없는 사회의 계급장이고 조직없는 조직원들의 제복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