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정책 제대로 하려면, 노동정책부터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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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출산정책 제대로 하려면, 노동정책부터 제대로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낳지 않는 게 아니라 낳을 엄두를 못내는 것

기사입력2022-10-20 08:59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1명,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더 어두운 전망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합계출산율이 0.69명까지 떨어질 것이라 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 1인 가구가 늘고 결혼을 해도 출산을 꺼리는 사회, 지방 도시의 소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불과 1세대 전,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했던 산아제한 정책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수직 하락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실 6.25 전쟁 이후 출산율이 높았던 건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노동집약 산업의 시기, 출산은 노동력 확보였고 가정의 수입으로 직결되는 일이었다. 지금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 사회 현상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육아와 양육,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더 늘어나는데, 저임금과 고용불안은 사회 전반을 휘감고 있으니 낳지 않는 게 아니라 낳을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노동정책이 70~80년대 산아제안 정책보다 더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인지도 모른다. 가장 근원적 욕망인 종족 번식의 욕구마저 억눌러야 살 수 있는 사회, OECD 최하위의 출산율은 낳기도 기르기도, 아이의 미래조차도 불투명한 현실의 성적표인 셈이다.

SPC그룹 제빵공장 20대 여성 노동자의 끼임 사망사고는 노동현실의 열악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사건이었다. 사건 현장을 천으로 가려놓고 직원들에게 작업을 계속하도록 지시한 기업의 도덕적 불감증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다. 피 묻은 빵을 먹을 수 없다는 불매 운동은 당연하다.

결혼을 하지 않는 1인 가구가 늘고 결혼을 해도 출산을 꺼리는 사회, 지방 도시의 소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러나 더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은 국민들의 허탈감과 드러나지 않는 분노다. 지게차에 깔려 죽고 용광로에 떨어져 죽고 기계에 끼여 죽는 노동자, 과로에 쪽잠을 자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택배 노동자, 이런 죽음들을 방치하는 국가를 보면서 누가 결혼을 생각하고 출산을 계획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가 이런 노동환경을 대물림 하겠다 생각할 것인가 말이다.

우리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 19년 만에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높아진 걸 두고 반색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출산율이 높아진 건 분명 좋아할 일이지만 속을 들어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 출산율만 반등하는 현상, 출산조차도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다. 결혼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저임금에 내몰리는 노동자, 결혼해도 아이 키울 신혼집조차 마련할 수 없는 맞벌이 젊은 부부들, 양극화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의 우리나라에도 곧 닥칠 수 있는 반갑지 않는 미래다.

그러나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한 비전이 발견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에서 저출산 타개책의 중임을 맡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취임일성은 한가롭기까지 하다. 과거 정부에서 답습했던 남성 육아휴직 추가 인센티브 검토 정도가 전부다. 이런 정책으로는 떨어지는 출산율을 막을 수 없다. 청년들은 저임금, 불안한 노동환경에서는 결혼할 여력도 아이 낳을 여유도, 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미래를 물려줄 생각도 없다고 태업 중인데, 정부가 내거는 출산 정책은 고작 일부 정규직에 혜택이 돌아가는 육아휴직 카드라니….

먹고 살만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제방 기계에 끼여 죽어간 노동자, 참변의 현장을 천으로 가리고 작업을 재촉하는 기업, 저렴한 노동과 손쉬운 해고를 강화하려는 정부, 이런 사회를 그대로 두고 아이 낳기를 권하는 건 태어날 미래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다. 출산 정책을 제대로 하려면, 노동 정책부터 제대로 손봐야 한다. 그게 태어날 노동자에 대한 예의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