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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늘릴 것인가, ‘윗돌 빼 아랫돌 괼 것’인가

안심소득은 복지 구조조정…복지를 확대하는 기본소득이 답 

기사입력2023-02-15 09:27
오준호 객원 기자 ( munard@daum.net) 다른기사보기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저자)
분배 정책에 관한 사고실험을 하나 해보자. 갑, 을, 병 세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가 있다. 세 사람의 소득은 갑이 0원, 을이 100만원, 병이 500만원이다. 갑은 가난하고 을도 넉넉하지 않은데 병만 소득이 꽤 높다. 불평등한 사회다. 

이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불평등을 줄이고자 두 정책이 선택지로 제시됐다. 두 정책 모두 가장 가난한 갑에게 최소 소득을 채워주는 건 같으나 방식은 다르다. 

우선 ‘정책①’은 병에게만 50만원을 내게 해서(세금이라 하자) 갑에게 준다. 정책 실시 후 소득상태는 ‘갑 50만원 : 을 100만원 : 병 450만원’이다. 

‘정책②’는 을과 병에게 세금을 걷어 셋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50만원씩 주었다. 필요한 돈 150만원은 을이 25만원, 병이 125만원을 내어 마련한다(세율 25%). 정책 실시 후 소득상태는 ‘갑 50만원 : 을 125만원 : 병 425만원’이다. 낸 세금과 받은 기본소득을 합친 결과다.

정책① 지지자들은 정책②를 향해, 갑에게 준 돈은 같은데 예산이 3배나 더 든다며 비판할 것이다(50만원 : 150만원). 그 지적은 틀렸다. 정책②에 150만원이 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명목상 금액이고, 실제로는 병에게서 갑과 을에게 총 75만원이 분배됐다. 정책①보다 1.5배 많을 뿐이다.

그리고 불평등 개선 효과는 정책②가 정책①보다 크다. 소득 재분배 이전 상태에서 지니계수가 약 0.5인데, 정책①은 지니계수는 약 0.41이고 정책②는 약 0.37로 낮아진다. 

더 중요한 사회적 효과가 있다. 정책②에서 을은 ‘참여하는 시민’이 된다. 정책①에서 을은 병이 얼마를 내고 갑이 얼마를 받든 무심하다. 자기와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②에서 을은 납세에 참여하기에 자신이 사회에서 받는 혜택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갑과 연대해 불평등 개선에 나설 동기가 생긴다.

두 정책은 동등한 최소 소득을 가장 힘든 시민에게 보장한다. 정책①은 최소한의 예산으로 최소한의 대상만 돕는다. 정책②는 보편적으로 모두 지원하면서 예산은 정책①보다 크게 많이 들지 않고 불평등 개선 효과 등은 더 크다. 여기까지 보면, ‘건전재정’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사람이 아닌 한 기본소득 방식에도 마음을 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인지 선별 보장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학자들은 저렇게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복지 증세는 불가능하고 예산은 한정돼 있다고 전제하고 시작한다. 

가령 그들은 예산은 ‘50만원’이라고 고정해놓고 그걸 기본소득으로 주면 갑을병 각자에게 약 16.7만원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불평등 개선 효과가 없고 ‘을’로 대표되는 중간소득자들에게 ‘용돈’을 주려고 더 힘든 이를 외면하는 부당한 정책인 것이다. 기본소득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반대자들이 해온 비판이다. 

기본소득도 안심소득도, 노동만으로 소득보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정책 대안으로 등장했다. 대안들이 공정하게 비교, 평가되고 그로 인해 더 생산적인 논쟁이 일어나길 바란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어떤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질문도, 비교 방식도 다르다. ‘예산은 고정불변’이란 전제에 갇힌다면, 기본소득의 과감한 평등주의는 물론이고 정책의 객관적 효과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복지예산 대체하는 안심소득의 한계

지난 3일 “‘오세훈표 안심소득’이 기본소득보다 불평등 완화, 실업률 감소 효과가 크다”며 언론이 특필했다. 전날 한국경제학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안심소득’의 설계자인 박기성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가 근거다. 박 교수는 “같은 돈을 투입한다면 안심소득에 투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일부 언론은 “기본소득은 양극화 해법이 될 수 없다”라고도 썼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범사업을 벌이며 적극 홍보하는 안심소득은,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음(-)의 소득세’가 원형인 선별적 소득보장제도다. 소득기준점을 정해놓고(시범사업은 중위소득 85%) 그 이하를 버는 저소득층에게 시장소득과 소득기준점 사이 차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현재 복지예산 가운데 30조원을 대체하여 이를 안심소득 또는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효과를 비교했다. 추가 재원 투입이 없다고 전제한 것이다. 30조원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주거급여, 근로·자녀장려금, 기초연금을 합친 예산과 대략 같다. 이를 보면 안심소득의 목적은 복지 확대가 아닌 ‘복지 구조조정’임을 알 수 있다.

이미 주어진 예산을 똑같이 쪼개 주기보다 소득 최하층에게 더 많이 주고 위로 갈수록 액수를 줄이면 그 예산 범위 안에선 재분배 효과가 커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예산이 애초에 너무 적다면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는 미미하다. 

한국처럼 양극화가 심하고 공적복지예산 ‘파이’가 작은 나라에서 핵심 목표는 파이를 늘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안심소득은 파이 늘리기는 포기하고 파이 일부를 떼어 사용방식만 바꾸자는 제안으로 보인다. 마치 저 언덕 위 부잣집 풀장에 물이 그득 차 있는데, 마을의 말라가는 우물물을 어떻게 나누면 효율적일지 문제만 따지는 것과 같다.

게다가 추가 재원 없이 기존 복지제도를 대체하는 방식으론, 소득 최하층의 처지를 조금 개선하더라도 차상위층 중엔 복지 지원이 줄어드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윗돌 빼 아랫돌 괴기다. 정책 수혜층이 좁으니 제도를 확대하자는 여론이 생기기도 어렵다. 

반면 기본소득은 절대다수 시민이 혜택을 얻으므로 복지 증세와 부의 재분배를 이끌어내기가 훨씬 유리하다. 기본소득은 풀장에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 모두의 우물을 채우자는 것이다. 

기본소득도 안심소득도, 노동만으로 소득보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정책 대안으로 등장했다. 대안들이 공정하게 비교, 평가되고 그로 인해 더 생산적인 논쟁이 일어나길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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