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결 무시 일제 강제동원 해법 치욕스럽다

프린트

오피니언 ㅣ 칼럼 법원판결 무시 일제 강제동원 해법 치욕스럽다 일제 침략에서 비롯돼 해결되지 않은 한일간 문제 수두룩한데

기사입력2023-03-10 13:10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해법은 어느 쪽으로 봐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다.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과 미래 발전에 부합하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라는 게,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직접 밝힌 제3자 변제안의 이유이지만, 설명 그대로라도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했다고 하는데 강제징용 피해자와 국민 대다수는 왜 반발을 하고 있는지,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일방적이고 굴욕적이기까지 한 양보만으로 가능한가 하는 것들이다.

2018년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 5명에 대한 배상을 미쓰비스중공업이 해야 된다는 결정이었다. 이 결정을 무시하고, 정부가 나서서 국내 기업의 출연금을 모아 배상을 대신하고 일본 기업에 구상권 청구나 일본 정부에 사과 요구도 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헌법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발상이자 피해자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다.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말처럼 대법원의 판결은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이지, 동냥처럼 돈을 주라는 결정이 아니다. 국민 대다수 생각도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일본 기업의 배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했다는 대통령, 피해자의 요구나 대법원이 적시한 배상 주체를 제대로 알고나 하는 발언인지 의문이다.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양국이 얽힌 이슈는 한둘이 아니며, 대부분은 일제 침략에서 비롯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다. 양국의 입장차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침략자’였던 일본이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풀기가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지난 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배상에 대한 제3자 변제방안 발표’ 규탄 촛불집회. <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는 우리가 먼저 제3자 변제방침을 내놓으면, 일본이 이에 호응하는 양보와 개선책을 내놓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의 예상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풀지 않고 있고, 우리 정부가 맞대응 성격으로 내놓았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검토 상황을 주시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또 일본 언론들은 초계기 문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한국 정부와 풀어야 한다며 일본 정부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는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은 완승, 일본의 요구가 통했다는 반응을 거리낌 없이 내놓고 있다. 공동이익을 추구했다는 윤석열 대통령 설명과는 거리가 먼 반응이다. 오히려 반성이나 상응하는 조치 대신 더 많은 요구, 더 큰 양보를 주문하는 일본의 태도는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해법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굴욕적이기까지 한가를 충분히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은 일본은 물론 미국의 요구와도 맞닿은 부분이다. 한일이 관계를 개선해서 한미일 대중국 안보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건 미국의 오래된 구상일 뿐이다. 이 또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수입·수출에서 중국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 일본을 넘어선다. 남북의 대치상황이 경제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는 마당에 한미일 안보라인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서는 건 피해야 할 일이다. 역대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힘겨운 갈등과 선택을 이어온 것은,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지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해법으로 내놓은 제3자 변제안. 피해자 입장을 존중했다거나 한일의 공동이익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건 전혀 수긍되지 않는다. 왜 이러나 싶을 정도의 굴욕감만 생길 뿐이다. 한미일 안보라인 강화(?) 또한 또 다른 무역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도 적은 게 아니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