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전의 재건…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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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무너진 성전의 재건…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다 천재가 그린 종교화…레오나르도 다빈치 ‘동방박사의 경배’㊦

기사입력2023-03-20 09:38

이다 미술역사가 (meundaisy@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르네상스 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해석을 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어떤 내용일까요?

◇언덕 위에 그려진 미스터리한 사람들=아기 예수와 마리아가 언덕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 앞에 있는 엎드린 자들은 손에 보물단지를 들고 있는 동방박사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언의 아기를 만난 것에 감격스러운 듯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말을 타고 예수를 향해 들어오는 행렬과 소란한 군중 무리가 예수를 둘러쌉니다. 그들은 서로 딴짓을 하며 예수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듯 보입니다. 소란스러운 무리의 중앙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는 한 손으로 박사가 내민 선물을 축복하고 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나무 옆에 서 있는 사람도 손을 하늘로 올리며 예수와 같은 포즈를 합니다.

IR 적외선 촬영한 ‘동방박사의 경배’.

배경 왼쪽에는 반쯤 무너진 성전 사이에 사람들과 말들이 움직이고 오른쪽에는 말을 탄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듯 요란합니다. 앞 장면과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뒷 배경은 이 작품을 더욱 미궁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와 마리아만이 이 혼란스러운 군중들 사이에서 유독 고독해 보입니다.

이 그림은 기존에 그려졌던 작품들에서 본 적 없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종교화에 흔히 사용되는 도상학의 상징을 잘 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도무지 확실하지 않은 것들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데, 이런 미스테리한 설정 때문에 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의 작품을 알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천재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게 하기 위해 아직도 부지런히 책을 뒤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종교화 속에 한 무리의 사람들과 나무, 부서진 건물 폐허와 말들의 무리를 그렸습니다. 어수선해 보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명확한 상징성이 없어 복잡해 보이지만, 잘 관찰해 보면 언덕을 경계로 해 진한 선이 예수가 있는 공간과 예수가 없는 배경을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이 그림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9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보이지 않는 신은 기하학적인 우주의 질서를 세우는 존재로만 이해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레오나르도는 뒷 배경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요, 앞에서 말한 이상한 풍경들 말입니다. 왼쪽 풍경은 반쯤 무너진 성전입니다. 두 개의 높은 계단을 가진 성전에 어린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계단 위에 앉은 사람, 계단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뭔가 일을 하는 듯 지시를 하는 포즈, 주변의 말들이 분주한 이 장면은 무너진 옛 성전을 다시 재건하는 모습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방박사의 경배’, 1481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희미한 듯 보여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이 장면은 피렌체의 국립복원연구소에서 진행한 IR 적외선 촬영을 통해 원래의 스케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 복원과정에서 적외선 촬영이란 일종의 X-선 촬영으로, 표면에 칠해진 물감 아래 오리지널 스케치까지 모두 단층 촬영되어 작품의 전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분석방법입니다.

사진(IR 적외선 촬영)에서 보면, 레오나르도의 처음 아이디어를 명확히 보여주는 초기 스케치를 볼 수 있습니다. 자재를 실어 나르고 기중기를 내리고 무너진 기둥을 재는 사람들이 계단 위에서 성전을 건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계단 위에 긴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자를 가지고 길이를 측정하는 건축가를 그린 것이죠. 이 장면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건축가를 묘사한 것입니다.

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걸까요? 뭔가 무너뜨린다는 것은 낡은 것을 버린다는 걸 뜻하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새 시대의 건축가, 그가 예수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무너진 터전 위에 재건, 즉 예수는 새로운 희망을 상징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가진 세계관은 우리에게는 미스터리하지만 기본은 심플하고 명확한 것 같습니다.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성경의 예수가 아닌 세계를 재건하는 건설자라는 범우주적인 발상, 천재는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궁금증을 이 작품으로 조금은 풀어 본 것 같습니다.

어떤 작가의 르네상스 미술은 너무나 이성적이어서 다소 어렵고 건조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신비로움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잠재력을 감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