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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시설 패스권’ 논쟁을 기본소득 토론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기본권’이 있다…사회적 대화로 이어졌으면 

기사입력2023-04-13 12:00
오준호 객원 기자 (munard@daum.net) 다른기사보기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저자)
최근 놀이시설 패스권이 갑자기 화제가 됐다. TV 프로그램에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언급한 것이 시작이었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등 유명 놀이시설에선 패스권, 곧 우선탑승권을 구매하면 인기 놀이기구를 줄서지 않고 먼저 탈 수 있다. 패스권은 일반권보다 비싸다. 정 교수는 패스권이 돈으로 새치기할 권리를 사는 거라고 비판하며, 사회가 돈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는 걸 아이들이 배우게 된다고 했다.

 

온라인상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패스권이 헌법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부터 기업과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이다까지 다양한 입장이 부딪쳤다. 이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에 롯데월드가 매직패스라는 우선탑승권을 발매하기 시작했을 때 돈으로 허용하는 새치기란 비판과 논쟁이 있었다. 논쟁이 다시 일어난 걸 보면 그만큼 결론짓기 힘든 주제란 뜻이다.

 

사회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앞서 논쟁을 벌였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에서 우선탑승권을 소재로 시장논리가 사회 여러 영역에 파고드는 문제를 지적했다. 돈을 더 내면 러시아워에서 빨리 가는 차선을 제공받는 제도나, 방청권을 얻기 위한 줄 서기를 돈을 주고 남에게 맡기는 일을 예로 들며, 샌델은 우리가 도덕적 가치판단을 시장에 맡겨버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패스권주제에 관련한 경험이 있다. ‘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2019)’이란 책을 쓸 때 청소년들이 느끼는 공정의 기준을 알고 싶어 그들을 자주 만나 여러 질문을 했다. 패스권에 대한 의견도 물었는데, 청소년 대부분은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라고 반응했다. 패스권도 하나의 상품이고, 구매할지 말지는 개인 선택이란 얘기였다.

 

처음엔 좀 놀랐다. ‘패스권 절대 반대는 아니어도 거부감이 있던 나와 많이 달라서다. 그런데 대화해보니, 그들도 돈만 내면 뭐든 살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이 돈을 더 낸 응급환자를 먼저 치료해도 된다거나, 돈을 더 내면 입시에 편의를 봐줘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지만, 다만 패스권이 그거라곤 보지 않을 뿐이다.

 

패스권 같은 건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와, 놀이동산에 처음 갈 때부터 그것이 있는 세대는 감각이 다르다. 이미 패스권에 별 모욕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소비자에겐 돈으로 허용된 새치기라는 지적이 공감보다는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

 

그들에겐 패스권에 반대하는 다음의 입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지 모른다. 놀이동산 사업자는 이용자에게 적정가격을 받고 안전하고 쾌적한 서비스 제공을 약속한 것인데, 그 서비스 제공 의무는 다하지 않고 줄 서기에 지친 일부 소비자만 웃돈을 받고 특혜를 준 것은 소비자들과의 계약 위반이다. 이 시각에선 패스권은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공정시장 원칙에 비춰 문제 있는 제도다.

 

최근 ‘놀이시설 패스권’이 화제가 됐다. 온라인상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패스권이 헌법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부터 “기업과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이다”까지 다양한 입장이 부딪쳤다. 이 논쟁에서 분배정의의 쟁점도 끌어낼 수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하지만 이 입장도 패스권을 넘어 적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원칙을 앞세워선 안 되는 필수재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필수재는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려면 갖춰야 하는 재화나 서비스다. 교육, 주거, 의료, 교통, 에너지 등이 여기 속한다. 이 영역조차 오로지 지불 능력에 비례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까? 돈을 내면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어야 할까? 그걸 막으면 선택의 자유를 막는 걸까? 그렇지 않다.

 

필수재의 영역에선 돈으로 살 수 없는 기본권이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누구든 충분히 쾌적하고 안전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먼저 보장하고, 그 이상에 대해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가 원칙이어야 한다. 이처럼 원칙의 선후를 정하는 건 곧 자원을 무엇에 먼저 분배할지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패스권 논쟁에서 분배정의 토론으로

 

한편 패스권 논쟁에서 분배정의의 쟁점도 끌어낼 수 있다. 패스권을 구매하면 놀이기구 우선 탑승이라는 보상을 받는 건 소득분배는 능력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과 통한다. 시장주의 혹은 능력주의다. 반대하는 입장에선 소득분배는 필요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거나, 소득격차를 강제적으로라도 최소화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학자 노먼 프롤리히와 조 오펜하이머는 사람들이 어떤 소득분배 원칙을 정의롭다고 이해하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두 학자가 제시한 선택지는 모든 사람에게 최저소득을 보장한 후 평균소득을 최대화하는 원칙 1인당 소득을 최대화하는 시장주의 원칙 빈부 격차를 최소화하는 원칙 최소수혜자의 최소소득 수준을 우선 상향하는 존 롤스의 차등원칙이다.

 

은 일정 소득을 모두에게 동등하게 제공하고 그 위에 각자 노력한 대로 추가소득을 올리게 한다. 는 시장에서 각자 능력대로 벌게 하고 그 경쟁을 통해 전체 부의 파이가 커지도록 한다. 은 소득 상한선과 하한선을 사회가 정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 는 분배 우선순위를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맞춰 그들의 소득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목표를 둔다.

 

숙의를 거친 후 압도적 다수가 을 택했다. 기본적인 필요를 동등하게 보장하고 그 다음엔 노력과 능력대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한 것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철저한 능력주의나 선별주의가 아닌 다른 분배방식을 택한다.

 

이 분배정의 원칙을 제도로 구현한 것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공유부의 권리를 근거로 모두의 기본 필요를 보장하는 제도다. 공동체의 부를 활용해 충분한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제공한다면, 노력 동기를 꺾지 않으면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패스권 논쟁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디로 구르면 좋을까. ‘패스권 싫으면 놀이공원 가지 마같은 공허한 비난 말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시민에게 보장할지, 어떤 소득분배 방식이 효율적이고 정의로운지 사회적 대화로 이어졌으면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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