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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인류세 시대 위험

턱밑까지 온 기후위기…아름답지만 불길한 일회용품이 만든 자연㊦ 

기사입력2024-01-10 07:01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미술가 타라 도노반의 작품은 자연 풍경이나 유기체의 형상을 닮았다(아름답지만 불길한 일회용품이 만든 자연㊤, https://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31565).

 

200711월부터 20089월까지 약 1년 가까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설치한 무제(마일라)[Untitled(Mylar)]’는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작품은 은색 마일라 테이프를 일일이 말아 붙여놓은 작품이다. 높이 250미터, 300미터가 넘는 전시장 벽에 설치한 이 작품은 마치 증식하는 미생물의 세포를 확대해 놓은 듯 보이기도 하고, 합성 이끼를 연상시키기도 했다종이접시를 겹겹이 겹쳐서 구겨 포도송이처럼 만든 무제(종이접시)[Untitled(Paper Plates)]’는 거대한 바이러스 분자와 유사하게 생겼다. 수백 개의 단추를 바닥에서 쌓아 솟아오른 형상을 만든 ‘Bluffs’는 인공 석순이나 산호초처럼 보이고, 수백 개의 스티로폼 컵이 천정에 붙어 있는 무제(스티로폼 컵)[Untitled(Styrofoam Cups)]’은 마치 뭉게구름이 천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장 바닥에 반투명 스카치테이프를 불규칙한 고리 형상으로 펼쳐놓은 ‘Nebulous’는 전시장 바닥에 얇은 서리가 끼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기적 형태를 띤 도노반의 작업에는 어떤 생명력이 느껴진다.

 

타라 도노반, ‘무제(스티로폼 컵)’, 2003/2008, 스티로폼 컵과 접착제, 가변설치. <출처=pacegallery.com>

 

타라 도노반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생산되고,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들을 대량으로 끌어모아 조직화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에는 후기자본주의사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중의 익명성 등이 내재해 있다. 환경오염에도 경각심을 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현대사회 소비문화를 비판하는 환경주의 예술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환경오염이나 대량생산·소비, 익명성 등을 생각하며 작업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진 않는다. 아주 작은 물건들이 수천 개, 수만 개 모였을 때 어떤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걸 실험해 봤을 뿐이다. ‘이게 단추였어?’ 하고 놀라는 관객들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흥미롭게 보길 원하는 것이지, 그 작업을 통해 어떤 특정한 사회적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타라 도노반, ‘무제(이쑤시개)’, 2004, 이쑤시개. <출처=quintgallery.com>

 

작가는 자기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형상을 포착해 작업으로 구현한다. 일례로 그의 대표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무제(이쑤시개)[Untitled(Toothpicks)]’는 작가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은 작업이다. 그는 워싱턴 D.C.에 있는 코코란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석사에 입학하기 전 6년 동안 서빙과 웨이터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2003년 에이스 갤러리에서 연 뉴욕 첫 개인전에서 크게 성공했을 때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않았다. ‘무제(이쑤시개)’는 작가가 식당에서 서빙을 하다 실수로 이쑤시개 상자를 넘어트리면서 탄생한 작업이다. 이쑤시개들이 상자에서 떨어졌는데도, 그것들이 상자 모양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가는 무엇을 할까 결정하기 전에 재료를 먼저 선택한다고 말하는데, 이쑤시개나 종이컵, 플라스틱 컵, 종이접시, 빨대 등은 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회용품으로, 아마도 그가 오랫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이 물건들을 자주 접했기에 작업 재료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카치 테이프나 핀, 단추 등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타라 도노반, ‘Bluffs–Illusion’, 2006, 단추와 접착제. <출처=mutualart.com>

 

도노반은 이런 말을 했다. “미술을 공부하지 않은 분들도 단박에 느끼고 재미있어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한번은 내 작품을 배송해 주던 트럭 기사분이 빨대 작품을 보고는 세상에 태어나 이런 건 처음 본다며 감동했다. 휴일인 다음 날에도 오셔서 작품 설치를 도와주셨다(웃음).” 작가는 하찮은 사물로 감동을 준다. 그냥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 모이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일회용품이 만들어 낸 장관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하찮은 것의 위대함을 말하기에는 너무 여유롭다. 기후위기가 우리의 턱밑까지 다다랐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사회운동가나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그래서 예술가가 반드시 사회적 메시지를 작품에 담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품의 절반은 감상자의 몫이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나는 감상자가 도노반의 작품에서 하찮은 것의 위대함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거대함에서 우리가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내재한 인류세 시대의 위험을 느끼길 간절히 원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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