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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나무와 보석으로 만든 ‘싸구려’ 물품들

통념을 뒤엎는 ‘수잔 콜리스’의 초라하지만 값비싼 작품㊤ 

기사입력2024-06-08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짝퉁이라는 말이 있다. 유명 브랜드나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모방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물건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이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단순히 품질이 좋기 때문만이 아니라, 비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재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짝퉁은 진품을 살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마치 그러한 재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려는 욕망이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짝퉁은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려는 반짝이는 금박지나 은박지와도 같다. 실제 금이나 은이 아니라, 금을 흉내 낸 금박지와 은박지인 셈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만약 금박지가 진짜 금이라면, 은박지가 진짜 은이라면 어떨까? 일회용 나무젓가락이 값비싼 삼나무나 호랑가시나무로 만들어졌다면? 흔히 사용하는 화장지가 손으로 짠 일본산 실크로 만들어졌다면? 겉보기에는 초라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귀한 재료로 값비싸게 만들어진 것이라면? 금박지와 은박지는 값싸게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사용되며, 일회용품은 한 번 쓰고 버리기 때문에 값싼 재료로 만들어진다. 화장지도 마찬가지다

 

수잔 콜리스, ‘우리가 영원히 사랑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위해’, 2009, 레바논 삼나무, 화이트 호랑가시나무, 호두, 화이트 골드(품질보증 마크가 찍힌), 플래티넘(품질보증 마크가 찍힌), 산화 실버(품질보증 마크가 찍힌), 토파스, 스모키 토파스, 호박, 116×9×8cm.
이렇게 쉽게 버려지는 것들, 혹은 낡고 녹슨 것들, 별 볼 일 없는 것들에 값비싼 재료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작가가 있다. 초라한 것, 별 볼 일 없는 것, 버려질 것, 낡은 것을 그 모양 그대로 아주 값비싼 재료로 재현하는 미술가가 있다. 바로 영국의 현대 미술가 수잔 콜리스(Susan Collis).

 

초라한 외형, 귀한 재료=수잔 콜리스는 겉보기에 가치 없어 보이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값비싼 재료로 제작해 우리의 통념을 뒤엎는 작업을 해왔다.

 

예를 들어, 그녀의 2009년 작품 우리가 영원히 사랑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위해(For all the things we thought we’d love forever I)’는 주택 개보수 현장에서 뜯어낸 듯한, 못이 튀어나오고 페인트가 묻어 있는 나무 막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주택 보수 현장에서 주워 왔을 것 같은 이 작품이 실제로는 값비싼 레바논 삼나무에 화이트 호랑가시나무로 상감했으며, 백금과 은 등으로 튀어나온 못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페인트 자국은 파토스와 스모그 파토스, 호박으로 만든 가짜 흔적이다.

 

비슷하게, 2012년 작품 가스 보이즈(Gas Boys)’는 폐기하기 위해 묶어 놓은 목재 묶음처럼 보이지만, 삼나무, 호랑가시나무, 호두나무, 비치우드, 너도밤나무 등 여러 가지 값비싼 나무로 제작되었다. 튀어나오거나 박힌 못들은 백금과 황금으로 만들어졌고, 페인트 얼룩은 호박, 청금석, 연수정, 스모크 토파즈 등의 귀한 천연석으로 만들어졌다. 목재를 묶은 얇은 하얀 끈은 흔히 사용되는 저렴한 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으로 짠 일본산 실크다.

 

수잔 콜리스, ‘오이스터의 우리의 세계’, 2004, 목재 발판 사다리, 자개, 조개껍질, 산호, 담수 진주, 양식 진주, 화이트 오팔, 다이아몬드, 81.3×38×58cm.
이외에도 콜리스는 작업복, 빗자루, 작업대, 발판 사다리 등을 선보였다. 그녀는 이처럼 사치스러운 재료를 일상적인 맥락 속에 숨겨 놓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주목받아 왔다. 감상자들은 페인트로 얼룩진, 오래된 싸구려 물품처럼 보이는 설치물이 사실 값비싼 나무와 보석으로 제작되었고, 얼룩이 고급 천연석과 자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면 상당히 당혹스러우면서도 신기해한다.

 

콜리스의 작업은 일종의 현대적 트롱프뢰유(trompe-l’oeil)로 볼 수 있다. 트롱프뢰유는 프랑스어로 눈속임을 의미하며, 실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기법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원근법, 명암법, 그리고 현실감 있게 보이는 세밀한 묘사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장식 예술에서는 유리로 과일을 만들고, 도자기로 채소와 꽃을 만드는 등 트롱프뢰유 기법이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콜리스가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는 도장공과 목수들과 같은 기술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값비싼 원석과 이국적인 목재를 사용한다. 작품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값비싼 재료가 이러한 기술자들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초라한 물건을 값비싼 재료로 만듦으로써 우리가 거의 생각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치는 은폐된 노동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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