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계가 어떻게 함께 생각하고 느끼는가

프린트

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사람과 기계가 어떻게 함께 생각하고 느끼는가 새로운 관계성, 기계와 공동 창작한다는 것에 대하여…수젠 청㊤

기사입력2025-09-19 12:3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누군가에게 그림은 감정을 담는 그릇이고, 누군가에게는 질문을 던지는 도구다. 그런데 만약, 그 그림을 사람과 로봇이 함께 그린다면? 붓을 쥔 손이 사람의 것이자 동시에 기계의 것이라면? 이 중첩된 경계에서 작업하는 예술가가 바로 수젠 청(Sougwen[愫君] Chung, 1985~)이다.

사람과 기계가 어떻게 함께 생각하고, 함께 느끼고, 함께 표현할 수 있는지를 오랫동안 탐구해 온 그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 새로운 감각과 인식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단지 ‘기계와 함께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기계와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예술적 탐색이다.

◇기계와 함께 그리기=수젠은 중국계 캐나다인 예술가이자 연구자로, 인간-기계 협업 예술의 선구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자신의 손으로 그려온 추상 드로잉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생체 신호 기술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을 결합하여 인간과 기계의 공동 창작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해 왔다.

브루클린 스튜디어에서 작업하고 있는 수젠 청, 2020. (Celeste Sloman for The Washington Post) <출처=www.washingtonpost.com>

흥미롭게도 그의 예술과 기술에 대한 관심은 성장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어머니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고, 아버지는 오페라 가수였기에, 수젠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코드라는 두 언어를 동시에 접하며 자랐다. 이와 같은 배경은 그가 예술과 과학을 상호 배타적인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관점을 갖게 된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

MIT 미디어랩에서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수젠은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2024년에는 TIME지가 선정한 ‘인공지능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감각과 기술의 구조 사이의 새로운 관계성을 제안하며, 인간 중심적 창작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는 특히 드로잉을 매개로 ‘공동 지각’, ‘공감각적 제작’, ‘기계적 감성’이라는 개념을 실험하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감각적 교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수젠이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15년경이었다. 당시 MIT 미디어랩의 연구원이었던 그는 ‘기계와 공동 창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창작이 끝나는 지점과 기계의 창작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해 수젠은 자신이 지난 20여 년간 손으로 그려온 방대한 드로잉을 스캔하여 데이터화하고, 이를 인공지능(AI) 모델에 학습시켰다. 이후 이 모델을 탑재한 로봇 DOUG(Drawing Operations Unit Generation)와 협업을 통해 ‘DOUG’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로봇은 단순히 미리 프로그램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젠의 드로잉 동작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그 움직임에 반응하여 작동한다. 마치 듀엣 연주자처럼, 로봇이 수젠과 함께 호흡하며 즉흥적으로 그려나가는 방식이다.

수젠 청, DOUG과 작업하는 모습, 2017. <출처=수젠 청 홈페이지 sougwen.com>

‘DOUG’ 시리즈는 1세대부터 현재의 6세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진화해 왔다. 초기에는 수젠의 손동작을 모방하는 데 그쳤지만, 점차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작가의 뇌파 신호(EEG)를 감지하고, 그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최신 버전의 ‘DOUG’는 수젠의 과거 작품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신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으며, EEG 데이터와 알파 뇌파에 연결되어 작가가 명상 상태에 진입할 때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며 그림을 그린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로봇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젠은 2015년 뉴욕에서 열린 첫 번째 공개 퍼포먼스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면상의 시뮬레이션에서는 픽셀 단위로 완벽했지만, 물리적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로봇은 미끄러지고 흔들리며 중단되고 비틀거렸고, 나는 그에 반응해야만 했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불완전함’이야말로 수젠이 추구하는 핵심이다. 로봇은 작가의 손동작을 이어받아, 새로운 선과 구조를 만들어내며, 예상치 못한 형태를 창조한다. 수젠은 이와 같은 작동 방식을 “예술적 공감각”이라고 표현했다. 이 공감각에서 예술가와 기계는 단순한 도구-사용자의 관계를 넘어, 감각과 표현을 공유하는 협업의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