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직접 경험’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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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직접 경험’은 어디에 유튜브·AI로 모든 걸 대신하는 시대…인간의 경험이 ‘멸종’한다㊦

기사입력2025-10-11 00:00

기술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커진 반면, 직접 경험하는 일은 줄어든 세태의 문제점을 다룬 책도 있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인 크리스틴 로젠은 저서 ‘경험의 멸종’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지하고, 가상의 영역에서 배운 것으로 현실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직접 경험’의 소중함

물론 기술의 이점은 분명히 있으며, 요즘 같은 세상에 기술을 이용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인간다운 경험 그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는 갈등이나 혼란, 마찰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기술이 우리의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혼란과 마찰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불편함이 사라진 공간에는 모든 삶의 능력을 기술에 맡겨 버린, 텅 빈 인간만이 존재한다. 책을 읽지 않고 기기에게 요약해 달라고 하는 일은 독서의 종말을, 문서 작성을 AI에게 맡기는 일은 생각의 종말을, 지시어만을 이용해 그림을 얻는 일은 창작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인간의 영역이라고 불렀던 고유한 경험들을 전부 기술에 맡긴다면,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불편함과 지루함을 수반하는 경험의 소중함을 깨닫는 수밖에 없다. 불편함이나 갈등, 느림과 실수, 지루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시행착오와 면대면 소통이 주는 귀중한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의 가치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타인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온라인 강의가 아닌 면대면 수업에서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온라인 추모 문자보다는 직접 장례식에 방문해 위로해준 사람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모바일 청첩장보다는 청첩장 모임에 직접 초대해 종이 청첩장을 직접 건네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믿는다.

이제라도 직접 대면이 주는 가치를 상기하며 인간 고유의 경험을 되찾고, 작은 일이라도 손수 시도하며 물리적인 경험을 쌓는 데 마음을 내줄 때다.

불편함이나 갈등, 느림과 실수, 지루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시행착오와 면대면 소통이 주는 귀중한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경험은 어쩌다 부담이자 비효율로 전락했을까

이처럼 기술이 인간의 고유한 경험을 대체하지 않도록 돌아보되, 어쩌다가 현대인이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부담이자 비효율’로 전락했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려면 시간과 돈,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가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도록 사람들을 몰아넣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노동 시장은 불안정하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정서적, 금전적 여유가 나날이 줄어들면서, 작고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실패하거나 도전하는 데 드는 기회 비용을 감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가령 영화나 드라마는 보고 싶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고, 피로가 쌓인 나머지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1.5배속, 2배속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단지 사람들에게 왜 직접 경험하지 않느냐는 지적만 할 수는 없다. 부유층은 각종 다양한 체험을 즐기고 해외여행도 직접 갈 수 있지만, 누군가는 유튜브로 대리만족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는 경제적 격차의 문제 역시 짚어보아야 한다.

한편, 디지털에 익숙해진 나머지 현실에서 타인과 직접 대면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이 역시 무작정 비판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최근 Z세대의 특징으로 ‘젠지 스테어(GenZ stare)’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젠지 스테어란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Z세대’와 ‘응시하다(Stare)’라는 낱말을 합친 신조어다. 이는 일부 Z세대가 대화나 질문에 반응하지 않고 말없이 상대를 빤히 쳐다보거나 멍하게 응시하는 태도를 일컫는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행동 양식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젊은 세대가 예의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SNS와 온라인 메신저에 의존하다 보니, 직접 얼굴을 맞대거나 전화로 하는 즉각적인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나머지 대화의 맥락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지연 현상으로 해석된다. 특히 Z세대는 학교를 다니고 한창 사회 경험을 쌓아야 할 시기에 코로나19를 겪은 만큼, 이러한 경향을 보이더라도 이해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