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 철회하고, 사회적 논의 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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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배임죄 폐지’ 철회하고, 사회적 논의 우선해야 재벌 경제범죄 제대로 처벌 안되는게 현실…대체입법 논의가 우선

기사입력2025-10-10 13:13

김윤진 객원 기자 (jin@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형법상 배임죄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배임죄 요건이 추상적이고 적용 범위가 넓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마련하겠다는 명분이다. 지난 7월 14일 김태년 의원이 형법상 배임죄에 ‘경영판단원칙’을 명시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지 두 달만에,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단순히 처벌규정 명문화 수준이 아니라 전면 폐지로 급격히 선회한 것이다. 당정이 재계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논리를 펼치는 것에 당혹감을 감추기가 어렵다.

재벌 경제범죄 제대로 처벌도 안되는게 현실

당정은 배임죄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고 하지만, 배임죄는 총수일가와 경영진의 불법적 사익추구를 막는 기본적인 장치로서 기여해왔다. 현행 법 조항의 배임죄 요건이 모호해 보이더라도, 그동안 판결을 통해 ‘경영판단원칙’이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로 회사를 위해 한 의사결정이라면 배임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오히려 법원이 배임죄 여부 판단에 지나치게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재벌 총수일가의 경제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계속 있어왔다. 오죽하면 총수일가에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풀어주는 경우들을 보면서 ‘3·5법칙’이라는 말이 생기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구절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겠는가.

그런데도 ‘경제형벌이 과도하니 합리화 해야 한다’며 배임죄 폐지하겠다는 당정의 주장은 연일 실형을 피해 빠져나가는 재벌 총수일가들을 바라보며 분노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무작정 폐지가 아니라 대체입법 논의가 우선

당정은 배임죄를 폐지하는 대신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대체입법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대체입법을 위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말 배임죄 요건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면 이전에 주장했던 대로 경영판단원칙 등 요건을 명확히 하는 개정을 하면 되는 일인데, 갑자기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정말 느닷없는 일이다. 형사 책임을 없애는 대신 민사 책임 강화를 위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방안도 사회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 증거개시제도, 집단소송제도 등의 방안은 대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한 중소기업 및 소비자 피해 구제 차원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이다. 이를 갑자기 대안으로 언급하며 무책임하게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혹여라도 민사 책임 강화를 위한 대체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채 배임죄 폐지부터 이루어진다면, 총수일가와 경영진의 사익추구에 대하여 민사적 수단으로만 억제하거나 피해를 구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발생할 것이다. 총수일가와 경영진이 사익추구를 위해 기업에 피해를 입혔을 때 기업이 직접 소송을 제기할 리는 만무하고, 주주나 기업의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근거자료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가장 큰 수혜자는 지배주주가 될 것이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경제의 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명문화, 합산 3%룰 강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연이은 상법 개정 행보를 보였으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위한 입법도 추진 중이다. 이는 총수일가 및 지배주주의 전횡과 사익추구를 용인하는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형법상 배임죄 폐지는 이러한 제도 개선 취지와 충돌하는 것이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두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배임죄 폐지는 국민과의 약속이 아니라, 마음대로 기업을 좌우하겠다는 재벌총수일가의 숙원일 뿐이다. 지난 겨울 추운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은 새로운 사회를 바라며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제질서이지, 재벌 총수일가를 위한 면죄부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을 강조하는 만큼 배임죄 폐지 방침을 철회하고 사회적 논의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