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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독립 큐레이터, 글로벌 큐레이터 그리고 그 이후 “이원일, 미디어아트와 탈식민주의 사이 글로벌 큐레이팅 전개”

기사입력2025-11-30 10:00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얼마 전 자료를 찾다가 이원일 큐레이터에 관해 알게 되었다.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2002년 제2회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전시 총감독, 2004년 제5회 광주비엔날레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2006년 제6회 상하이 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 제4회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전시 총감독, 2007년 독일 ZKM 개관 10주년 기념전 ‘예술의 터모클라인 – 뉴 아시안 웨이브즈(Thermocline of Art – New Asian Waves)’ 공동 큐레이터, 2008년 제3회 세비야 비엔날레 큐레이터, 2009년 프라하 비엔날레 큐레이터까지. 그는 201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세계 곳곳에서 큐레이팅 실천을 전개한 ‘글로벌 큐레이터’였다.

또한 그는 아시아인 당사자로서 탈식민주의적 기획을 전개한 큐레이터이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김성호는 이원일의 큐레이팅을 통합, 탈지정학, 교차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갈무리한다. 이원일이 공동 기획한 ZKM 개관 10주년 기념전의 주제가 ‘뉴 아시안 웨이브즈’였다는 점, 기금 조성 문제로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예정대로라면 2008년에 MoMA PS1에서 열렸을 전시의 주제 또한 아시아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을 돌아보면, 그가 아시아인, 나아가 한국인으로서 미술사를 재해석하고, 이를 큐레이팅 실천으로 나타내고자 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보인다.

‘예술의 터모클라인 – 뉴 아시안 웨이브즈(Thermocline of Art – New Asian Waves)’ 2007년, 전시 전경.

하지만 그가 2002년 기획한 제2회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의 주제는 탈식민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는 현재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로 명칭이 바뀌었다). 비엔날레의 주제는 ‘달빛 흐름’으로,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이는 밀레니엄과 세계화, 그리고 디지털화의 흐름 속에서 생겨난 낙관과 우려, 그리고 기대가 고루 담긴 주제로, ‘사이버 숭고미’를 찾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사이버 숭고미’라는 주제는 2004년 타이베이 MOCA에서 열린 전시 ‘디지털 숭고’로, 그리고 2005년 상하이 젠다이 현대미술관(현 상하이 히말라야 뮤지엄)에서 열린 ‘전자 풍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계열의 전시는 탈식민주의보다는 미디어아트 기획에 가깝다. 나아가 이와 같은 기획은 그가 ‘글로벌 큐레이터’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원일의 실천이 이어질 수 있었다면 한국인 입장에서 미디어아트와 탈식민주의를 교차시키는 기획을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큐레이터 강종길은 이원일의 사망을 두고 ‘한 큐레이터의 죽음은 정녕 남의 일이었나?’라는 제목의 부고를 남겼다. 이 글은 ‘글로벌 큐레이터’ 활동의 화려함 이면에 감추어진 여러 사정을 낱낱이 드러낸다. 큐레이터는 부족한 일정과 예산을 어떻게든 감당하며 전시를 이끌어야 하고, 때로 사비를 들여 전시를 마무리해야 한다. 겉으론 그럴싸하게 보여도, 결국 남는 것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 밖엔 없다는 것이다.

생전에 이원일은 자신을 예술 전투기 조종사로 불렀다고 한다. ‘제트셋 큐레이터’라는 표현이 있다. 전 세계를 오가며 국제적인 기획을 펼쳤던 역사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활동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제트셋’을 넘어, 전투기처럼 공격적인 활동을 보이겠다는 목적을 담은 단어였을 테다.

실제로 이원일의 기획은 언제나 과감하고 공격적이었던 듯하다. 2002년 비엔날레 기획 당시, 70억 원 예산을 배정 받은 직전 비엔날레와 달리 단지 7억 원의 예산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원일은 기획의 주요 개념을 참조한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초청하는 등 적극적인 기획에 나섰다. 유사한 주제로 국제적인 기획을 전개할 기회를 얻었으니, 결과적으로 그의 공격적인 기획은 꽤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논란도 있었다. 2006년 상하이 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을 때, 그가 작성한 기획자의 글이 네덜란드 평론가 헹크 슐라거의 글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ZKM 전시를 연 뒤에는 서울과 베이징, 뉴욕, 뭄바이 등을 오가는 일정을 소화하다가 나폴리의 국제 심포지엄 일정 중 쓰러져 병원에 이송된 적도 있었다. 주어진 시간과 예산 속에서 언제나 그 이상을 해내는 것. 이것은 아마도 한 사람의 독립 큐레이터가 ‘글로벌 큐레이터’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일 테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언제나 문제가 벌어진다. 큐레이터 자기 자신에게든, 혹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든 말이다.

이원일에 대해 짧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그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력을 남긴 큐레이터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의 실천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여러 사람을 기억하는 길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고 여긴다. 이원일을 국제적 비엔날레 기획을 맡은 최초의 한국인 큐레이터로 기억하는 건,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그를 미디어아트와 탈식민주의 사이에서 글로벌 큐레이팅을 전개한 한국인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그와 그의 기획을 가로지른 여러 작가, 인물과 함께 말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