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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700억원이 넘는 돈을 대가없이 기부했다?
돈을 낸데 그 이유가 있다는 추론은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이다
- 기사입력2016-09-22 21:2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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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단 ‘미르’와 체육재단 ‘K스포츠’가 여의도 한복판에 섰다. 이름도 낯선 이들 두 재단의 기부금 모집 및 설립과정의 적법성 등을 둘러싸고 여야간 공방이 거세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선입견을 버리고 확인된 사실만을 가지고 얘기하자.
700억원이 넘는 돈이 문화재단 ‘미르’와 체육재단 ‘K스포츠’에 들어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금을 주도했다. 기부금을 낸 기업들은 삼성, 현대차, LG, 포스코 등 각각 19개 재벌기업들이다. 여기까지는 여야 모두 인정한다.
이들 두 재단의 설립과정을 보자. K스포츠 재단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에 지난 1월 12일 설립 신청을 한 뒤 불과 하루 만에 재단 설립 허가증을 받았다. K스포츠 재단 보다 두달여 앞서 출범한 미르 재단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미르 재단은 2015년 10월 26일 허가신청서를 낸 다음날 허가증이 나왔다. 설립 신청일과 재단 설립 허가증이 발급된 날은 여야 이견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재단설립의 경우 신청에서 허가까지 1주일 이상 걸리는 관행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사건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례적’이란 주장에 대해 황교안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하루 만에 허가를 내 준 선례가 있다”고 했지만 '이례적인’ 사건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두 재단의 정관은 총칙에서부터 조항 순서와 문구 등 정관의 내용은 거의 똑같다. 재단의 성격을 드러내는 정관의 목적도 유사하다. 설립목적에 미르가 “문화라는 매개”라고 명시한 것을 K스포츠가 “체육이라는 매개”라는 표현으로 바꾼 정도가 다를 뿐이다. 두 재단의 설립이 엇비슷한 시기에 빠르게 진행됐고, 모금과정 역시 전경련을 통해 재벌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또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이 기부금 모금 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지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까지는 확인된 사실이다.
기부금 모금 과정을 보자. 돈은 낸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자발적으로 낸 것인지, 팔을 비틀어서 뜯어낸 것인지 알 길은 없다.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진실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을 포함 수십억 이상의 기부금을 낸 재벌기업의 총수들은 모두 장사꾼이다.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장사의 신’, 반열에 오를만한 이들 총수들이 돈을 낸 데는 이유가 있다고 추론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에 속한다.
이들 두 재단이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설립됐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을 낸 당사자들이 합리적 이유를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700억원이 넘는 돈을 이런 저런 선의의 목적으로 아무런 대가없이 기부했다고 국민들에게 밝히고, 국민들의 판단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5공 청문회에 등장해 정치자금을 기부했다고 증언했던 재벌 회장들과 동일하게 볼 수밖에 없다. 5공 당시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재벌기업은 정권으로부터 그 이상 가는 보은을 받았고,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았던 기업은 공중분해 되거나 이런 저런 고초를 겪었다.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22일 대정부 질문에서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모금했다고 해명했는데도 야당에선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지금 세상에 기업들이 그렇게 하겠냐”고 물었다. 물었으니 답을 하자면 “지금 세상에도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사꾼은 장사꾼이니까. 김 의원의 의문(?)에 비추어 김 의원을 판단하자면 둘 중 하나다.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면 무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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