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폭스바겐…피해크다, 집단소송 허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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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정책법률 옥시 폭스바겐…피해크다, 집단소송 허용하자 현행 증권거래만 집단소송…소비자피해 커 남용 우려 설득력 잃어

기사입력2016-09-26 00:00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다. 생산자의 유해물질 배출 등에 따른 대규모 환경·공해 파괴, 제조물 결함 등에 따른 집단적인 소비자 피해가 빈발하고 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스바겐 연비·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일한 사건으로 동일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집단소송을 허용함으로써 보다 쉽고 빠르게 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18일부터 한국여성소비자연합, 한국YWCA연합회, 한국소비자연맹 등 10개 참가단체를 중심으로 10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서명운동 돌입에 앞서 “반사회적 기업에 책임을 묻고 사후 피해구제에 개인들의 대항력을 키우기 위해 소비자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이달까지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입법을 청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단소송제도는 집단적 피해자 중 일부가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해 판결을 받으면 제외신고를 하지 않은 피해자 모두에게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소송형태다.

‘집단소송’ 아닌 ‘다수당사자소송’…배상범위 다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섰지만, 엄밀하게는 소송에 참여한 사람들만 손해배상을 받는 다수당사자 소송이다. 사진은 지난 5월16일 서울 서초구에서 민변이 주최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판매사 및 국가를 상대로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집단소송’ 기자회견<사진=뉴시스>

지난 5월1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436명이 ㈜옥시레킷벤키저를 비롯한 관련 업체들을 상대로 112억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제기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다. 옥시 사건으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만큼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국내법상 증권 관련 집단소송 이외 집단소송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오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은 소송법상 ‘집단소송’이 아닌 ‘다수당사자’소송이다. 현행법상 인정되는 집단소송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 따라 증권거래시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만 인정된다.

집단소송과 다수당사자소송은 손해배상 범위에서 차이가 있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집단소송에서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로 포괄적으로 명시하는 반면, 다수당사자소송에서 피해자들은 소송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로 제한한다”며 “집단소송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본 피해자 전체가 배상대상이지만, 다수당사자소송에서는 소송에 이름을 올린 피해자들만 배상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폭스바겐 사태와 관련, 미국과 한국의 예를 보면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다. 폭스바겐의 경우 미국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최저 5100달러(약 580만원)에서 최고 1만달러(약 1136만원)까지 배상금을 받는다.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배상금은 없으며, 손해배상을 받기위해 개개인이 동일한 피해에 대해 따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7월 ‘집단소송법안’을 발의하면서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사건과 관련, 폭스바겐측이 미국에는 약 17조원의 배상에 합의한 반면 한국에서는 배상계획이 없다는 극단의 대조를 보인 것은 국내 소비자보호 장치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며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관련 국회입법조사처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에서는 소송에서 빠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고, 다수당사자소송에서는 소송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차이”라고 중기이코노미에 설명했다.

또 집단소송을 할 수 없어, 소비자가 소액의 손해를 입은 경우 소송의 실익이 크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기도 힘들다. 가령 지난 2013년 취업준비생 7명은 YBM한국토익위원회가 부당한 약관에 따라 시험응시료의 40%만 환불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YBM한국토익위원회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정은 이렇다. 매월 계속 있는 토익시험에서 응시생은 1월에 시험을 접수하고 응시했으나 1월 중순 이후 시험결과가 발표된다. 따라서 시험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응시생 대다수는 1월 시험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2월 시험에 접수를 한다. 2월 시험을 접수한 응시생들은 1월 시험 성적을 확인한 후 자신이 원하는 점수를 얻은 경우 2월 접수를 취소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YBM한국토익위원회는 1월 시험성적이 나온 시점에서 2월 접수분을 취소한 응시생들에게 약관에 따라 40%만 환불했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발표한 ‘토익 국내 응시자 및 응시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 6년간 토익시험 응시생 수는 1219만명이다. 올해 9월23일 기준 토익시험 응시료는 4만4500원~4만8900원이며, 이중 40~60%라면 최소 1만7800원에서 최대 2만9340원이다. 개인에게는 아깝다고 여겨질 돈이지만 소송까지 가기에는 무리다. 만약 집단소송제도 하에서 2008년에서 2013년 응시생 중 10%가 환불을 요구했다고 가정한다면, 응시료 100%환불을 기준으로 최소 213억원에서 최대 352억원 규모의 소송이 된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지난 6월 ‘소비자집단소송법안’을 발의하면서 “정유기업 담합으로 더 비싼 휘발유를 구입한 소비자, 과대허위 광고로 잘못된 정보를 통해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토익시험 시행사의 부당약관으로 부당환불을 당한 소비자 등 소비자 집단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며 “이러한 경우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으나, 소액손해가 광범위한 다수에게 발생한 경우 변호사비용 등 소송비용으로 인해 적절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자료=국회> ©중기이코노미

증권거래는 집단소송 가능…20대 국회 관련 법안 발의 중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증권 거래과정에서 다수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피해자의 대표당사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증권관련집단소송법 제12조에 따른 소송허가요건은 증권거래와 관련해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가 발생한 구성원(피해자)이 50명이상 이어야 한다. 또 손해배상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이와함께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총원(피해자 전원) 모두에게 권리실현이나 이익보호에 적합하고 효율적인 수단이어야 한다. 현재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박영선 의원의 ‘집단소송법안’과 서영교 의원의 ‘소비자집단소송법안’에서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요건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안과 유사하다.

두 발의안의 차이점은 있다. 박영선 의원안은 민소소송법 특례로서 집단소송제를 추가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소송요건만 충족하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서영교 의원안은 소비자기본법이나 제조물책임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 여타 다른 법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집단소송을 인정한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20대 국회 발의안은 별도의 법으로 집단소송을 보장하려는 것”이라며 “집단소송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소비자 편의를 위해 요건을 완화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용우려다.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자를 모아 이슈화해 손해배상을 이끌어내는 공격수단으로 집단소송이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경미한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을 목적으로 전문변호사가 나서 손해배상을 이끌어 내는 기획소송이 문제시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증권거래 집단소송도 2005년 입법 이후 6건 제기됐으며 비슷한 제도인 소비자단체소송도 2004년 신설 이후 10건이 안된다”며 “남용 우려는 딱히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소송 당사자가 직접 소송에 나서야 한다는 민사소송법과의 충돌도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증권거래에서 이미 집단소송이 허용됐는데 다른 분야에서‘민사소송법과 충돌’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사실상 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산업계와의 이해충돌 때문에 입법이 어려운 면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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