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 멈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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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위험의 외주화’ 멈춰 세워야 한다 위험작업 저임금 비정규직 통해 해결…죽음의 외주화까지 진행

기사입력2016-10-10 19:1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태어날 땐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땐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예외적인 상황을 전제한 얘기다. 해서 바꿔말하면 죽을 때도 순서가 있다는 말이 정확한 말이다. 다만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 않지만 사회통념, 통계상으로 볼 때 죽는 순서는 나이 순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일찍 죽는다. 예외적인 상황을 얘기한 것인가.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이란 고용형태를 이유로 먼저 혹은 나중에 죽는다는 통계는 없다. 다만 열악한 노동환경, 정규직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자산상태, 고용불안에 따른 스트레스 강도 등 저간의 사정에 비춰보면 빨리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해도 반론에 부닥칠 여지는 크지 않다. 실제 그랬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일찍 죽었다.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에 따르면, 2011~2015년까지 지난 5년간 전국 고속도로에서 모두 53건의 사고가 일어났다. 이 중 49건(92.4%)의 사고 피해자가 모두 외주용역업체 근로자들이다. 긴급공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로 유지·보수 업무가 외주화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또 국민의 당 신용현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일어난 81건(사상자 92명)의 사고 중 하청업체(협력업체)의 사고 비중이 71건(사상자 82명)에 달했다. 81건의 사고 중 사망자는 6명이고, 모두 하청업체 근로자다. 사망원인은 모두 질식과 익사였다. 위험한 작업은 하청업체에 맡기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결과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먼저 또는 많이 죽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3년 3월 대림산업 여수 화학공장 사고로 근로자 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2014년10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아르곤 가스에 질식돼 5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2015년 4월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에서 근로자 3명이 질식사했다. 2016년 5월 구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로 죽은 청년 근로자도 있다. 이들 사고의 공통점은 하청업체에서 발생했고 사망자 또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다. 비정규직이란 말이다.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위험의 외주화란 대기업 또는 대기업 소속 정규직이 처리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작업을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는 용역 또는 외주업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조선업, 철강, 건설업 등에 특히 많은 것은 주로 대기업의 인건비 절감과 고용유연성 확보때문이다. 대기업과 수직 종속적인 하도급 관계를 갖고 있는 이들 하청업체는 관행화된 불공정거래 하에서 이윤을 짜내기 위해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하다. 또 무리한 공정 진행에 따라 안전관리 문제는 뒷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울러 산재사고 발생에 따른 원청과의 거래관계 단절을 우려해 사고가 난 경우에도 사고발생원인을 찾아 개선하기 보다는 은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소한 안전사고에 대한 엄격한 대응이 없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안전불감증을 조장함으로써 더 큰 산재, 죽음의 외주화까지 진행된다.

위험의 외주화를 예방하기 위해 대기업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실효성도 없다. 원청 대기업에 대한 제재 등 위험의 외주화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먼저 하도급 사업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업장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인 원청업체 사업주를 반드시 처벌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형사처벌 이외 처벌유형도 다양화해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실질적인 부담을 갖도록 해야 한다.

유해·위험업무의 경우는 하도급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청 근로자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했던 공정들은 원칙적으로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청업체 차원에서 위기상황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고, 시설개선 등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외 건설업의 재하도급 금지규정을 조선, 철강업 등을 포함 전체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장에서 하청 근로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목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은 작업도중 재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발동하는 작업중지권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작업중지권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이 대피할 수 있는 권리만을 보장하고 있다. 작업중지 후 대피를 넘어 유해·위험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는 권리를 근로자들에게 부여해야 한다.

이외 원하청 사업장 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위험의 외주화 나아가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