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료 요구 정당해도, 서면으로 교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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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기술자료 요구 정당해도, 서면으로 교부해야 서면 없이 요구 두산중공업…중소 하도급업체 기술보호 규정 위반

기사입력2021-03-24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소하도급 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산중공업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2000만원 부과를 결정했다. ©중기이코노미

두산중공업이 중소 하도급업체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목적 등이 기재된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같은 이유로 두산중공업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2000만원 부과를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2015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발전소 설비에 사용되는 밸브 제조를 위탁하고 납품받는 과정에서, 2개 중소업체에게 밸브 제작과 관련된 도면 등 기술자료 4건을 요구했다.

공정위는 “기술자료 요구의 정당성은 인정됐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이 중소업체로부터 납품받는 밸브가 발주처가 요구하는 사양, 성능, 기준 등을 충족했는지 확인하고, 다른 부품과의 물리적·기능적 정합성을 검토하기 위한 목적 등이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전에 권리귀속 관계, 비밀유지사항, 대가 등을 정한 서면을 제공하지 않은 사실이 문제가 됐다.

하도급법은 기술자료 요구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양자 간에 요구목적, 권리귀속 관계, 비밀유지에 관한 사항 등을 명확히 하고, 사후 분쟁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기술자료 요구서를 제공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원사업자의 기술자료 요구서 제공 의무는 요구목적, 대가, 권리귀속 관계 등 수급사업자의 기술 보호를 위해 지켜져야 할 핵심사항을 사전에 명확히 해 정당한 이유 없는 자료 요구 및 원사업자의 자의적 해석을 방지하고 더 나아가 기술유용행위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절차적 의무”라고 해당 규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아울러, 기술자료 요구서 제도의 안착을 위해 요구서 미제공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적발시 엄중 제재하며, 제도 홍보 노력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당 기술탈취 방지 법개정 추진=공정위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기술탈취를 지속적으로 적발해오고 있다.

지난해 7월 공정위로부터 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현대중공업 사례는 유명하다.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부과된 과징금 중 역대 최대 액수다.

공정위에 따르면, 기술을 탈취당한 하도급업체는 핵심기술의 국산화를 함께 하는 등 현대중공업과 20년간 협력해왔다. 그러나 현중은 이 업체에 부당하게 기술자료를 제출받은데 이어, 이를 타 업체에 넘겨 해당 부품의 생산을 이원화하기까지 했다. 이후 단가인하에 이어 일방적인 거래중단까지 단행했다.

기술탈취를 예방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한 기업에게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게 됐다.

중기부는 지난해 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기업 간 거래에서 고의·악의적인 기술자료의 부당한 사용·제공 행위 방지와 피해기업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을 위해 징벌과 억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미 하도급법과 부정경쟁방지법 등 유사한 법률에 도입돼 있다. 하지만 모든 수탁·위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상생협력법에는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중소기업 기술보호의 사각지대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도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앞서 현대중공업에 부과된 9억7000만원의 과징금이 역대 최대치인데, 이것이 기업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란 이유에서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와 KDI(한국개발연구원)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국 기업부문의 이중구조, 현재와 미래’ 정책포럼에서, 양용현 KDI 시장정책연구부장은 최대 손해배상 배수를 10배이상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상생협력법 개정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적극 찬성의사를 밝힌 반면, 전경련은 “해당 상임위에서 충분한 논의없이 법안이 처리됐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수탁기업이 법 위반행위를 주장하면, 위탁기업이 자기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도록 한 개정안에 대해 입증책임의 전환이라며 반발했다.

반면 중기부는 이를 “수탁기업의 입증책임 부담완화 규정”이라고 표현했다. 기술탈취를 중소기업이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담을 일부 완화했다는 의미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