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감세로 월급쟁이 세부담 늘어나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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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대기업 감세로 월급쟁이 세부담 늘어나선 안돼 세금 깎아주면 다른 누가 부담해야 하는데 월급쟁이에게 고통 가중

기사입력2022-10-05 20:16

영국의 새로운 내각을 이끄는 리즈 트러스 총리가 최근 내놓은 감세방안이 파운드화 가치 폭락을 유발해, 영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50년만에 최대 규모의 감세인데도 지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 중 일부인 고소득자 대상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안을 철회했고, 파운드화 가치는 일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전체 감세 규모에 비하면 소득세율 인하안의 비중은 작은 편이어서, 파운드화 안정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례를 두고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세금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이 그대로면 정부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같은 재정건전성 악화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풀이다. 이는 타당한 면이 있는 분석이다. 감세를 뒷받침할 지출 구조조정 안을 내놓았다면, 파운드화 가치 폭락과 같은 대규모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터다.

트러스 영국총리의 감세안이 파운드화 가치 폭락을 유발하면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문제는, 감세와 재정건전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는데 있다. 지출 구조조정을 과감히 하더라도 필수적인 복지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취약계층과 자영업자의 체력이 약해진 와중이라, 무리한 지출감축이 민생경제의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감세가 경제활성화로 이어져 세수 증대로 연결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전세계 경제가 침체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긍정적인 기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누군가에게 세금을 깎아준다면 그 차액만큼 다른 누군가가 더 세금을 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도 이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국회의원이 기재부에서 받은 ‘연도별 세목별 세수 현황’ 자료를 보면, 2008년 MB정부 감세 이후 근로소득세의 세수는 연평균 9% 속도로 증가한 반면, 법인세는 그 절반인 4.7% 증가하는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결산 기준으로 걷어들인 근로소득세수 총액은 47조2000억원으로 2008년의 3배 이상 증가했다. 연평균으로 보면 6.3% 늘어난 수준이다. 올해는 세수가 2008년의 네 배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가계소득을 보면, 연평균 3.3% 증가하는데 그쳤다. 임금 및 급여는 이 기간 동안 3.7% 늘었다. 소득이 늘어난 것보다 근로소득세수 총액이 늘어난 비율이 2배 가량이다.

그런데 MB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린 2008~2017년 기간을 보면, 기업소득은 연평균 6.3% 증가한 반면 법인세는 4.3% 증가에 그쳤다. 2017년 이후 법인세 최고세율이 인상되면서 다시 법인세 증가비율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기업소득 증가 속도가 더빨랐다.

이에 따라 국세 전체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23.4%에서 2021년 20.5%로 2.9%p 감소했다. 반면 근로소득세의 비중은 9.3%에서 13.7%로 4.4%p 늘어났다.

고용진 의원은 “정작 세금 증가의 과속에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할 계층은 기업이 아니라 가계”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상위 100대 기업에 돌아가는 법인세 감세 규모는 4조원 규모로 기업당 400억원이다. 반면 소득세 감세 효과를 분석하면 직장인 10명 중 9명은 한 달 2만원도 안되는 수준”이란 것이다.

앞서 영국의 사례에서 봤듯이, 감세가 재정 악화로 연결된다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너무 크다. 그래도 감세가 필요하다면, 최근 세금 부담이 늘고 있는 유리지갑 월급쟁이에 초점을 두는 편이 옳다. 최소한, 대기업에 대한 감세가 나중에 월급쟁이 세금부담의 증가로 이어져서는 안될 일이다. 정부는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임금인상 자제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고통분담이 어째서 월급쟁이에게만 가중되고 있는지, 정부의 답이 필요하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