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모 단정’의 기준이 뭔가요”…성·외모 차별

프린트

오피니언 ㅣ 칼럼 “‘용모 단정’의 기준이 뭔가요”…성·외모 차별 헷갈리고 차별적 채용광고 여전…노동권 침해는 중대한 인권 문제다

기사입력2023-02-10 13:20

‘용모 단정’이라는 단어처럼 사람을 헷갈리고, 이상하게 만드는 말이 없다. ‘옳은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 단어를 볼 때마다 ‘과연 나는 단정한 외모를 지닌 사람인가?’라며 자문하게 된다. 일반인도 이러한데 모든 요건이 경쟁의 척도인 취업시장에서는 더할 수밖에 없다. 채용요건에서 이 단어를 본 취업준비생과 아르바이트생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질까. 자괴감 혹은 불안감이 다수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사실 ‘용모 단정’이라는 말은 채용규정 요건상 사라진 지 오래됐다. 2006년 당시 대통령 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공공기관의 면접기준에서 여성들이 용모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모’ 규정을 완전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대다수의 공기업과 사기업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며, 채용 시 성별·외모·학력·나이 등을 기준점으로 삼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차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부터 약 한 달간 주요 취업포털에 올라온 1만4000개 구인광고를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성차별적인 모집·채용 광고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업체만 924곳이었고, 이 가운데 811곳은 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다.

78.4%의 비중으로,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구인광고에서 성차별적인 광고가 올라왔으며, 서비스직, 무역·유통, 교육, 생산·제조, 영업·상담 등 대부분의 모집직종에도 성차별 광고가 만연했다. 예를 들면, ‘남자 사원모집’, ‘여성 우대’, ‘주방 이모’처럼 특정 성에만 채용의 기회를 주거나, ‘키 172cm 이상 훈훈한 외모의 남성’이라는 표현을 쓰며 직무수행에 불필요한 신체적 조건을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업무에 남자와 여자의 임금이 다르게 적힌 사례도 있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에 있어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또한,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등의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도 안 된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여전히 관행적으로 ‘용모 단정’이라는 채용조건을 내건 회사는 흔하다.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를 적는 난은 사라졌지만, 암암리에 외모로 인한 차별은 이뤄지고 있고, 심지어 이런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고용주들도 많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커피숍 사장은 ‘외모가 출중한 알바생을 썼더니 매출이 눈에 띄게 올랐다. 남녀 손님 모두 증가했고, 재방문율도 높다’고 올렸고, 이에 동의하는 업주들의 증언도 줄을 이었다. 얼마 전에는 유명 햄버거 체인점에서 라이더를 모집하며, ‘성실하고 용모 단정한 만 19세 이상’이라는 자격요건을 내걸어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편의점 야간 단기근로자로 지원한 면접자에게 ‘손님이 불편해할 것 같이 생겼다’며, 채용을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점주에게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할 것을 권고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에 있어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등의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서도 안 된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차별’은 소규모 사업장과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직종에서 주로 벌어진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를 받기 힘들고, 면접과정에서 차별적인 요소가 드러나더라도 적발이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직무 및 업무수행 능력과 무관한 성차별적 관행은 심각한 고용상 성차별이자 인권침해로 보고 있다. 경제적 독립을 위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첫 관문에서 이런 장벽을 맞닥뜨린 청년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이들의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채용과정에서 절대적 ‘을’의 입장에 서 있는 지원자들은 기업의 이런 ‘차별적 채용공고’에 자신을 꿰맞추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여야 용모가 단정한 걸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온다. ‘외모가 매력적이어야 하고, 청결해야 하며 관리된 느낌을 줘야 한다’,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 ‘외모, 청결, 발음, 눈빛 등 사소한 것까지 호감이 가게 보여야 한다’ 등의 답변이 달려 있다.

불합리한 조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해서든 채용시장에서 고용주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청년의 고뇌가 고스란히 보이는 대목이다.

당분간 ‘외모 단정’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성차별적, 외모 차별적인 채용조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철폐했다 하더라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있을 것이고, 이 안에는 그 인재에게 요구하는 ‘풍모’와 ‘분위기’가 포함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또, 아무리 정부의 눈을 피해 차별적인 요소를 없앴다 하더라도 ‘면접’이라는 공인된 자리에서 등락을 좌우하는 것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변할 수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력서에 키·몸무게·혈액형을 당연하게 적어야 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비록 형식적일지라도 언젠가는 변하기 마련이다. 단, 그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근로자도 함께여야 한다. 근로자가 채용과정의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외칠 때, 기업도 자정하려고 노력한다.

소비자 역시 알려야 한다. 알바생의 출중한 외모를 보기 위해 특정 커피숍에 가는 고객은 일부 극소수일 것이다. 대다수의 고객은 맛과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 혹은 입지 편리성 때문에 특정 커피숍을 찾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요즘처럼 비대면 배달을 주로 하는 세상에 라이더와 얼굴을 마주하는 고객은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정부도 성차별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하고 채용부터 근로, 퇴직 단계까지 성비를 공시하는 성별근로공시제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반기에 공공기관부터 적용한 이후 2025년부터 500인 이상 대기업이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82.7%가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잊어선 안 되겠다.

정부는 5인 미만 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준수하고 있는지 더욱 촘촘하게 관리·감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고용 성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곳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고용노동부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고 고용노동부는 사법조치까지 할 수 있지만, 인력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정부는 채용과정에서 벌어지는 외모와 성차별적인 문제에 대응할 전문기구를 설립해, 차별받은 근로자를 신속하게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