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과 산만함 사이의 무빙 ‘움직이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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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몰입과 산만함 사이의 무빙 ‘움직이는’ 이미지 영화와 미술의 교차를 보여주고자 했던 ‘플랫폼 서울 2010’

기사입력2025-09-16 13:01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무빙 이미지는 자주 사용되지만 의미를 정의하기 어려운 미술 어휘 중 하나다. 직해하자면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뜻을 갖지만, 보통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영상 작업을 지칭하는 어휘로 사용된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의아한 부분도 있다. 영상이나 비디오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굳이 다른 단어를 쓸 이유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영상 작업은 영상이나 비디오 같은 단어로 갈음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고, 무빙 이미지는 이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는 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무빙 이미지의 첫 번째 함의는 영화와 미술의 교차다. 미술사가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리처드 세라, 로버트 스미스슨과 같은 현대 미술가들이 아방가르드 영화의 관객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적 있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 이들은 소비에트나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영화, 미국과 영국의 무성 영화 등을 정기적으로 관람하곤 했다는 것이다. 영화 관람 경험은 이들의 작업에 주요한 영감으로 작용했다. 영화와 미술의 겹침은 이처럼 꽤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미술과 영화의 교차는 매체라는 문제에 흥미로운 곁길을 제공했다. 영화는 회화나 조각과 달리, 하나의 매체라고 보기 어렵다. 영화에는 필름이 있고, 필름에 빛을 비추는 영사기가 있고, 빛이 닿는 스크린이 있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있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과 관객이 앉아 있는 극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다양한 구성 요소가 상호 의존한 결과 나타난 매체로, 이 중 본질적인 역할을 맡는 구성 요소를 가려내기 힘들었다. 현대 미술가들은 영화를 통하여 ‘단일한 미적 매체’라는 관념을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이는 예술의 전체적인 기획을 변형시키는데 기여했다.

무빙 이미지는 이 외에도 여러 함의를 갖는다. 영화 매체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리고 제도적 변화와 함께 TV, 스마트폰, VR, 또한 미술관 등으로 확장됨에 따라 나타난 ‘포스트-시네마’라는 문제, 미술관에서의 산만한 관람과 극장에서의 몰입적 관람이 교차함에 따라 나타나는 화이트큐브와 블랙박스 사이의 문제, 미디어의 디지털화 이후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 파일이 영상의 기본 단위가 됨에 따라 나타나는 이미지와 지표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무빙 이미지는 이처럼 복잡해진 매체성과 환경을 다각도에서 반영하기 위한 완벽하지 못한 단어로 사용되었다.

김수자, ‘호흡’, 2003~2006, 싱글 채널 비디오 설치, 어 위빙 팩토리 소속 아티스트의 보이스 퍼포먼스, 10분 40초 루프(비디오) 11분 30초 루프(소리), Courtesy of Kimsooja Studio.

따라서 무빙 이미지를 전시한다는 것은, 단순히 영상 작업을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일이다. 한국에서 무빙 이미지를 다룬 전시 중, 이러한 복잡함을 간과하지 않은 사례가 존재했다. 아트선재센터의 전시 ‘플랫폼 서울 2010: 프로젝티드 이미지’(2010)였다. ‘영사 이미지’를 뜻하는 ‘프로젝티드 이미지’를 부제로 선택한 해당 전시는, 2006년부터 시작된 아트선재센터의 전시 시리즈 ‘플랫폼’의 일부였다. 전시는 2010년 11월 3일부터 11월 9일까지 짧은 기간 개최된 행사에 가까웠지만, 백남준, 브루스 나우만, 빌 비올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폴 매카시, 피에르 위그, 하룬 파로키 등 66여 명 작가의 작업이 상영되었으며, 관련 강의가 뒤따르는 등 꽤 큰 볼륨을 가졌다.

‘플랫폼 서울 2010’은 영화와 미술의 교차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시각 예술 작가의 영상 작업은 극장에서 상영하고, 영화 감독 작가의 작업은 전시 공간에서 보여주는 큐레이팅은 그 일환이었다. 특히 전시가 비판했던 건 미술관에서의 영상 관람 경험이었다. 극장과 달리, 미술관은 영상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영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고, 미술관에 놓인 의자는 불편하기만 하다. 음향 역시 제대로 된 감상이 불가능하다. ‘플랫폼 서울 2010’은 작업이 놓이는 환경을 뒤바꾸어, 미술관에서의 산만한 관람 경험을 몰입적인 관람 경험으로, 극장에서의 몰입적인 관람 경험을 산만한 관람 경험으로 바꾸었다. 이는 곧 작업 자체가 만들어내는 경험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제 미술관에서 싱글 채널 비디오 작업을 마주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미술관은 여전히 몰입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미술관에서의 관람 경험은 점점 더 다양화되고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산만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산만함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클레어 비숍의 경우, 이처럼 산만한 관람 방식이 화이트큐브와 블랙박스의 관습을 교란하고, 각 공간의 이데올로기를 훼방 놓는 비판적 역량을 갖는다고 평가한 바 있다. 만약 이러한 평가를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무빙 이미지 전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플랫폼 서울 2010’ 이후 무빙 이미지를 개괄하고자 하는 전시가 있다면, 그 전시의 큐레이팅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무빙 이미지라는 복잡한 단어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질문을 여럿 갖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