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불법행위 막자 ‘스튜어드십 코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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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국민연금 불법행위 막자 ‘스튜어드십 코드’ 주목 ‘큰 손’ 공정한 의결권 적극 행사…기업지배구조 투명성 높여야

기사입력2017-01-29 14:33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찬성결정 자체에 대한 ‘적절성’ 여부를 떠나, 국민연금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행위 등으로 인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가 주목받고 있다. 사실상 전체 국민의 노후자금이 특정인의 사욕을 위해 동원되지 않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한 투자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력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공단과 같은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가이드라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을 시작으로 일본, 홍콩, 스위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10여개 국가가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제브라투자자문의 이원일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제브라투자자문의 이원일 대표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최근 열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영향과 기업의 대응과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꼴찌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을 위해서 우선 국민연금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이 투자시장의 ‘큰손’인 만큼,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에 요구하고, 사례를 보이면 다른 기관투자자도 따라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란 얘기다.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89곳 중 62곳에 5% 이상 지분 보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89곳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62곳(69.6%)이다. 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기업은 모두 289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활용한다면, 재벌총수들의 기업 계열사에 대한 편법지원 등과 같은 불투명한 경영을 견제하고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근거다.

선문대 곽관훈 교수(법경찰학과)도 이날 세미나에서 “과거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국가정책으로 제시될 정도였고, 그런 측면에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수탁자로서의 국민연금 책임은 연금 가입자의 기금을 활용해 수익을 내고 노후보장을 하는데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봐도 수익률을 고려하기 위해선 (투자대상 기업의) 지배구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탁자의 책임’과 관련해 한국거래소 산하의 기업지배구조원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라 불리는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최종안을 지난해 12월 발표됐다.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에 따르면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 향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함으로써 고객과 수익자의 중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할 책임 ▲이사회가 부여받은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는지 점검하고 필요에 따라 이사회와 적극 대화하는 등 건설적인 관여활동에 나설 책임을 기관투자자에게 부여했다. 이런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는 의결권 행사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전략과 성과, 위험관리, 지배구조 등 핵심 경영사항을 점검하고 이사회 등과 협의하며, 주주제안과 소송참여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이와관련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 정성엽 팀장은 “2008년 ‘자산운용사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당시, 기관투자자의 소극적인 의결권 행사행태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며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만능방편은 아니다. 기관투자자가 투자행태를 중장기적으로 바꿔서 경영에 관여해 기업과 기관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기관 빠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확산에 한계

또 정 팀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기관투자자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가 연성적 규범인데다가, 이를 도입한다고 당장 지배구조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런 면에서 제정 마지막에 금융위원회가 빠진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영국의 경우 준공적기구인 FRC(Financial Reporting Council, 재무보고평의회)가, 일본은 아베 총리가 직접 주도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정 팀장은 “영국은 최근 2016년 7월 참여기관을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상태를 점검한 결과, 자산운용사 169개사 중 잘 준수하고 있다는 응답은 50% 수준”이라며 “금융시스템에서 하이스탠다드인 영국에서, 준공적기관이 제정한 것도 이 정도인데 민간주도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국내처럼 민간주도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추진하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판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당초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정부기관이 참여해 추진했지만, 공정성 확보를 이유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주축이 돼 제정했다.

한편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주원 이사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주주들이 현재가치와 미래가치를 고려해서 합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며 “주주에 대한 배당은 현재가치지만 투자는 미래가치다. 어느 쪽이 더 이익일지는 모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장기투자 보다는 단기투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기관투자자의 개입이 확대될수록 단순히 수익을 내서 배당을 늘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주 실장은 “현재로서는 미완의 시도지만 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은 충분하다”며 “현재 한국경제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낙후된 기업지배구조가 원인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