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소송에서 ‘신의칙’, 근로자간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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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통상임금소송에서 ‘신의칙’, 근로자간 차별이다 강행규정 위반한 노사합의 인정…근기법 취지에 대한 본질적인 훼손

기사입력2017-08-31 09:48

이동철 객원 기자 (leeseyha@inochong.org) ㅣ다른기사보기

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앞서 두 번에 걸쳐 소개한 금호타이어 통상임금소송에서 남은 쟁점은 미지급된 체불임금을 근로자들이 소급해서 청구할 수 있는가 여부다. 이 사건을 심리한 광주고법은 ‘이 사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여기까지 인정했다면, 소를 청구한 근로자들은 체불임금청구권을 사실상 확보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근로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체불임금 소급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회사의 항변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통상임금 관련 신의칙 법리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전합판결은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 요건’으로 다음의 3가지를 들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도록 노사간 약속한 사실이 있을 것 ▲노사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믿은 상태에서, 이를 제외하고 임금인상 등을 약속한 사실이 있을 것 ▲노측이 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사측이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으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존립이 위태로운 등의 사정이 있을 것 등이 그것이다. 전합판결이 제시한 법리에 따르면 이들 3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에 우선하여 신의칙을 적용하고,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상 중대한 부담, 기업존립 위험 등 이유로 추가임금 청구 기각

전합판결이 제시한 신의칙 법리에 근거해 광주고법은 “▲‘이 사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하여 통상임금 산정기준에서 이를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하였던 점 ▲단체협약에서 통상임금 산정시 기초로 삼은 임금에 더하여 ‘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산입할 경우 통상임금의 액수는 단체협약에서 예정한 통상임금의 액수를 훨씬 초과하게 되고, 피고의 직원 수는 생산직 직원만 3400여명에 달하는데, 이들의 경우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 초과근로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져 피고가 추가로 부담하게 될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은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협상의 자료로 삼은 가산임금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하고, 근로자들이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받게 될 경우 그들의 실질임금 인상률은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상호 양해한 임금인상률을 훨씬 초과하게 되는 점 ▲워크아웃 기간 동안 당기순이익이 증가하고 부채비율이 감소되는 등 피고의 재정상태가 호전되었으나, 이는 피고의 경영성과가 개선된 결과라기보다는 이 기간 동안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원금 납부유예 및 이자감면 등의 다양한 혜택을 받은 것과 더불어 근로자들의 임금 동결 및 삭감 등으로 비용이 큰 폭으로 절감된 것에 기인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이고, 워크아웃이 종료된 이후 현재까지 당기순손실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등 경영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인한 추가임금청구는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피고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는 이유와 함께 근로자들의 추가임금청구를 기각했다

재판과정에서 전합판결의 신의칙 법리가 이번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는 근로자들의 주장이 있었다. 2013년 전합판결 이후 2014년 1월24일 노조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것은 무효이며, 이를 통상임금에 산입하여 초과근무에 대한 임금산정에 반영하여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회사로 보냈다. 공문 내용을 근거로, 근로자들은 ‘공문을 발송한 이후에는 회사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노사간에 신의칙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전합판결 이후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고려한 실질적인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지지 않은 점 ▲2015년 노사간에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이 사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점 등을 들어 근로자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1심판결, 경영상 부담에 대한 사용자의 항변을 좁게 해석

최근 잇따르는 고등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은 대체적으로 근로자의 추가 수당 소급청구에 대해 신의칙을 근거로 사용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이라면 합의가 어찌됐건, 이를 지켜야 한다며 경영상의 부담에 대한 사용자의 항변을 좁게 판단했던 1심판결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전합판결이 제시한 신의칙 적용 요건을 끌고와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추가수당을 재산정한 이후, 추가 임금 청구의 부당함을 구체적으로 설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번 금호타이어 판결에서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통상시급(1만234원)이 기존합의에 따른 통상시급(7989원)과 비교해 큰폭의 인상률(30%)이 예상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재산정한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 회사가 부담해야 할 부채비율과 당기순손실 증가율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재정적 부담을 평가하기도 했다.

근로자들의 소급청구권을 부정한 금호타이어 판결에도 불구하고, 31일 선고가 예정된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에서, 법원이 신의칙 법리를 근거로 추가 임금 소급청구를 기각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워크아웃까지 갔던 금호타이어와 기아차는 경영환경에 따른 지급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의 법원판결을 미루어 짐작하면, 현재 진행중인 다수의 통상임금 소송사건에서 신의칙을 강조하며, 추가수당의 소급청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은 크다.

신의칙 인정…결과적으로 지불능력없는 기업 근로자는 차별

그럼에도 계속되는 통상임금소송에서 신의칙 법리를 이유로 법원이 기업의 재정부담을 고려하는 판결을 할 경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모든 근로자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는 근로기준법의 취지가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소급청구권을 배제한다면, 지불능력이 있는 기업의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기업의 노동자 사이에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명문의 강행규정을 해석을 통해 배제함으로써 근로기준법의 취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재판이 아닌 정치를 했다는 비판이 여전히 계속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