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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세상 참 많이 변했죠, 그런데 서민 생활은요?”
작은 변화라도 생활에서 느낄 수 있을 때 세상이 변했다고 느낀다
- 기사입력2018-02-24 17:11
김준모 객원 기자 (gubtree@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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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많이 변했죠?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을 넘겨 다시 맞은 겨울을 보내는 지금까지, 주위에서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1년을 하루같이 집과 일터를 오가며 살다가, 어쩌다 가족행사나 친구들 모임이 먼 거리에서 생기면 길어야 사나흘을 못 넘기는 일정이라도, 생활의 궤도를 벗어나게 해준 짧은 여행에 감지덕지하는 처지죠. 그러다보니 ‘세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넓이와 상관없이 제게 있어 세상은 제 주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회적기업 ㈜청솔노인요양센터 김준모 대표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을 맞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들 중에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할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이겠지요. 노란 산수유 꽃보다도 하얀 매화보다도 먼저 핀 봄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른 봄꽃도 피기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을 당했고, 매화와 산수유가 피어나고 목련마저 탐스러운 꽃망울을 터뜨릴 무렵, 높고 차가운 시멘트 담장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습니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은 참 많이 변한 세상의 상징이기도 하거니와 변하는 세상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은 재작년 가을에 시작돼 겨울을 넘겨 봄까지 이어지며 백만인파가 모인 촛불집회에 의한 것이었으니, 한국사회가 변했고 변하고 있다면 그 동력은 촛불집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매일매일 집과 일터만 오가며 사는 저 같은 사람조차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앉아있었으니, 저잣거리의 장삼이사들이 한국사회를 변하게 하는 동력이었는지도 모릅니다.설에 차례를 지내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자니, 어머니께서 “금메달을 딴다고 우리한테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뭐 한다고 그렇게 보고 있냐?”하시더군요. 어렸을 적부터 그런 장면에서는 늘 들리던 말이라, 이제는 그런 어머니의 말씀도 응원처럼 들립니다.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머니 말씀이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따든 은메달을 따든 우리한테 도움 되는 건 없지요. 밥도 안 나오고 떡도 안 나오죠. 마찬가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 역시 밥이 나오는 일도 떡이 나오는 일도 아니지요. 그런데도 저는 어째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고, 세월호가 인양되고, 올림픽에서 남북한이 하나가 되어 동시 입장하는 걸 보면서 그렇게 기뻐하고 먹먹해지고 감격했을까요? 밥도 떡도 나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을 맞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들 중에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할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이다. 사진은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국민들. ©중기이코노미아! 그래도 하나는 있군요. 최저임금이 16.4%나 올라 최저시급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대폭 인상된 것은 밥도 나오고 떡도 나오는 소식이지요.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기업들이 어려워지고 특히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망할 위기에 놓였다고 하소연이지만, 월급이 올라 서민들의 소비가 활발해지면 영세한 소상공인들의 수입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믿고 싶습니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기본적인 생계도 해결하기 어려운 저임금에 허덕이는 이웃들의 고통을 담보로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곳에서 시급제로 일하는 열악한 근로조건의 사람들이 가장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아는 시급제 노동자들은 심드렁하더군요. 그래봤자 별 거 없을 거라고, 오히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하면서 한숨 쉽니다.최저시급이 6470원이었던 작년에도 법적으로 당연히 받아야할 주휴와 연차를 계산하면 시급이 8000원 이상이어야 하는데, 시간당 6470원만 받았다면서 최저시급이 7530원으로 오르는 것보다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는게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있는 법도 지키지 않는 판에 최저임금을 올려봤자 달라질 게 있겠냐는 말이지요.어떤 사람들은 최저시급이 1만원은 돼야 하는데 7530원도 너무 적게 오른 거라는 말을 합니다. 너무나 고마운 말이지요. 하지만 시급 7530원도 주휴와 연차를 계산하면 9400원 정도 됩니다. 주휴와 연차를 법대로 지키기만 하면 이미 실질임금은 시급 1만원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대로 지키기만 한다면 말이지요.바보처럼 알면서 왜 당하고만 있냐고요? 물론 그분들도 압니다. 고용노동부에 가서 근로감독관에게 이야기하면 받지 못한 주휴와 연차를 소급해서 받을 수도 있겠지요. 이의제기한 당사자만 말이에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다른 직원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게 법이에요.그래도 받지 못한 주휴와 연차를 받을 수 있으니 해보라고요? 저도 그렇게 조언했었지요. 그런데 또 그게 아니랍니다. 그렇게 당연한 권리를 지키고 나면 당연히 사장님 눈밖에 나버릴 테고, 은근하지만 집요한 구박을 받으면서 계속 일할 자신은 없다하네요. 주휴와 연차를 소급해서 받아도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 생계비로 쓰다보면 오히려 더 힘들 거라는군요. 답답하지요? 당사자는 오죽 답답하겠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노조라도 만들라고 할까요?세상 참 많이 변했나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는 걸 보고, 이제야말로 서민을 위한 정부가 들어선 것 같아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창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볼품없더라도 애초에 해야 했던 일부터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최저임금과 주휴와 연차를 지키게 하는 일 같은 것 말이에요.거창한 일들은 밥도 나오지 않고 떡도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 화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지만, 작더라도 실질적인 변화는 서민들의 생활을 바꾸지요. 그게 진짜 변화 같아요. 지체 높은 분들은 달리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저와 같은 저잣거리 장삼이사들은 작은 변화라도 생활에서 느낄 수 있을 때 세상이 변했다고 느끼거든요. 텔레비전 화면이 아닌 내 월급봉투와 내 직장, 내 가정에서 말이에요.<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