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만능 사회가 ‘양진호’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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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금전만능 사회가 ‘양진호’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법 존엄을 마비시킨 법집행자의 묵인·결탁, 제대로 단죄해야

기사입력2018-11-11 18:00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엽기적인 행각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얘기를 듣노라면, 이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회의가 든다. 역사는 모순을 하나 둘 헤쳐 나가며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한다지만, 양 회장이 활개칠 수 있었던 세상과 봉건사회 간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구태여 차이라면 신분에 따라 권력을 나눴던 봉건제와 돈으로 권력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차이랄까.

권력에 의해 짓이겨지고도 아무런 항변조차 못했던 못 가진자들. 국가와 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방패막이일 뿐이라는 자괴감은 국민 모두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었던 셈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뉴스타파가 몇차례 걸쳐 보도한 양진호 회장의 폭행과 비리는 단순하다. 온라인으로 음란물 등을 대량으로 유통시켜 양 회장은 1000억원대의 돈을 모았다. 그는 막대한 부를 이용해 법을 무력화하는 폭력과 잔혹한 가혹행위, 동물학대 등 경악할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

국가와 법은 폭력을 방치했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책무는 방기됐다. 평등과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유지돼야 할 우리 공동체는 오직 돈의 힘으로 굴러가는 괴물이 됐다. 돈만을 숭배하는 괴물사회가 양진호라는 괴물을 만들어낸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폭행과 강요 혐의 등으로 체포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7일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압송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음란물 유통으로 1000억원대를 벌수 있는 사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지만 사실이다. 양진호 회장의 폭행사건이 드러난 이후에도 논란이 된 웹하드업체는 여전히 영업 중이다. 온라인에서 음란물이 버젓이 유통되고 청소년에게 가감없이 전달되는 현실을 방치하고서, 성범죄를 줄이고 저작권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정책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어떤 노력도 없이 불법으로 1000억원대의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사회정의나, 노동의 신성함은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하다고? 부자들이 가난한 자에게 던지는 조롱에 불과하다.

전·현직 직원을 폭행하고 대학교수에게 가래침과 구두를 핥게 만드는 야만, 국가가 이를 방조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자조가 아니더라도, 이 사회는 권력을 가진 자와 돈을 가진 자에게 너무 관대하다.

기업총수가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동안, 골목대장과 같은 작은 권력자들은, 우리사회 곳곳에서 왕으로 또 폭군으로 군림했다. 양진호 회장의 폭행사건 뒤에 드러나지 않는 ‘양진호’가 얼마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극단적 양극화에 왕과 농노로 이분화된 계급구조, 이래서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늦었냐는 원성이야 듣겠지만, 그래도 법의 칼을 빼들었다니 다행이다. 지켜볼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진 경찰과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한 것 같지 않다. 피해자인 대학교수 폭행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검찰도 수사대상이 되는건 당연하다. 양 회장을 괴물로 만들고, 법의 존엄을 마비시킨 법 집행자들의 묵인·결탁은 낱낱이 밝혀지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벌써 양진호 회장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다는 보도가 나온다. 변호받을 권리야 누구한테도 있겠지만, 그 덕에 단죄의 길이 막힌다면 국민들의 상처는 더욱 치유할 수 없을 지경으로 빠져들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평등, 공정, 정의로운 사회, 아직은 멀었다. 음란물을 유통시켜 1000억원대 재산을 모으고, 그 돈으로 왕처럼 군림하는 끔찍한 ‘헬조선’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세상이다. 사법부와 정부, 국회 그리고 모든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