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진출 韓기업, 노동인권 침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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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 ㅣ 아시아·오세아니아 “아세안 진출 韓기업, 노동인권 침해 심각하다” 신남방정책에 찬물 끼얹나㊤ 정부 대응 미온적, 방지시스템 마련 시급

기사입력2019-05-21 19:03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지난 3월 ‘인도네시아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해결촉구 한국-인도네시아 동시행동’을 열고, 기업과 정부의 행동변화를 촉구했다.<사진=공익법센터 어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아세안 3개국 순방을 마친 뒤 국무회의에서 “신남방정책은 대한민국 국가발전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아세안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 정부 차원에서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신남방정책이 마냥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세안 국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현지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하고 있고, 한국정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신남방정책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의 정신영 미국변호사가 지난 16일 참여연대와 한국동남아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아세안 진출 한국기업의 노동·인권 침해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신영 변호사는 한국 언론에 널리 보도된 인도네시아 봉제업체 SKB의 사례를 들었다. 이 업체의 한국인 사장은 지난해 10월 3000명의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채 잠적했다. 피해자 중에는 한국인 직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가 2월 개최한 경제협력 행사에 참석한 인도네시아 노동부장관이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할 정도였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당국과 대응방안을 공조하라고 직접 지시하기에 이르렀고, 노사합의 끝에 체불임금 지급방안이 결정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정 변호사는 “이 사안이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한국기업 진출지역에서 만연한 사례”라고 했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와 인도네시아의 노동투쟁연대위원회는 지난 3월 인도네시아 진출 한국기업 14곳의 인권침해 문제를 알리고 대책을 요구한 바 있다. 공장이 갑자기 문을 닫고 한국인 소유주가 아무런 통보없이 자취를 감추는 사례가 수 차례 있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음에도 이에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한 사례도 여러 기업에서 발생했다고 보고됐다. 퇴직금이나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참여연대와 한국동남아학회가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지난 16일 개최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정신영 미국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아세안 진출 한국기업의 노동·인권 침해를 지적했다. ©중기이코노미

정 변호사는 “인도네시아 단체가 조사한 내용을 추린 것 중에서 공개할 수 있는 사례가 14건”이라고 했다. 또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아세안 국가에 진출한 기업 다수에서 유사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회 이후 21일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정신영 변호사는 “SKB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잘 해결된 건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런 문제가 만연한데, 반복해서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비판했다.

반복해서 발생하는데…재발 방지 위한 시스템 구축 필요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현지 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국제규범은 이미 수립돼 있다. UN이 만든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 지침’이나 OECD 가이드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토대로 영국의 경우, 국가인권 기본정책에 해외진출 기업도 인권을 존중하는 경영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한국 역시 국가인권 기본정책을 수립했지만,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고 정 변호사는 지적했다. 또 SKB 사태 이후 한국정부가 유사 사례를 조사한 뒤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다고 했다.

한국의 대사관이 이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기업에 관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현지 대사관이 의견 청취를 하는 등 통로 역할을 해서 피해가 커지기 전에 해결에 나서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이란 것이다.

정 변호사는 “신남방정책에 찬 물을 끼얹는 것은 야반도주한 사장 한명이 아니다. 해외진출 한국기업들의 만연한 반인권적인 노무관리 관행과, 피해자 구제책은 지원하지 않으면서 반인권적 사업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한국정부의 정책 모두가 포함될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 모두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