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통화로서 엔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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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안전통화로서 엔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에, 국채 발행으로 정부 부채 유지 위해 ‘나홀로’ 저금리

기사입력2022-09-02 14:14

김현섭 객원 기자 (lastloser@kbfg.com) ㅣ다른기사보기

국민은행 WM 스타자문단 한남PB센터 김현섭 센터장

과거 세계경제 여건과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려울수록 강세를 보이던 일본 엔화가 2022년 들어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5일 기준으로 보면, 일본 엔화는 연초 원화 대비 6%, 미 달러 대비 14% 정도 약세가 됐다. 외환 투자를 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엔화가 쌀 때 사두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고 나중에 일본 여행갈 때 대비해 사두기도 한다.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통화로 간주됐다. 그래서 세계경제나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엔화는 강세를 보인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엔화가 위기상황에서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일본 경제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때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고, 세계 최상위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무역과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엔화 약세의 원인은 우선 일본이 수출보다 수입이 빠르게 증가해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에너지와 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수입액이 크게 증가하면서 2022년 현재 일본의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막대한 정부 부채를 지탱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저금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이 안전통화로서 엔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더 중요한 이유로 일본의 금리정책을 꼽을 수 있다. 40년 만의 최고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미국은 경기둔화를 감수하더라도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도 이미 수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경기침제 위험이 커진 유로존의 유럽중앙은행 ECB조차 금리인상에 동참했다. 그런데 일본 중앙은행 BOJ는 여전히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로 인한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확대가 엔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면서 정부 부채가 계속 증가했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262%로 부채비율이 세계 두번째로 높다. 정부 부채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낮은 생산성으로 경제성장이 수십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 인상은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세금 인상을 선택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인구 노령화로 복지비용 등 지출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데 반해 재원 마련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은 불가피하게 국채 발행을 통해 정부 부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국채 발행으로 매년 지급해야 하는 막대한 이자 비용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는 저금리 유지가 불가피하다.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 비용이 증가해 정부 부채 부담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막대한 정부 부채를 지탱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저금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이 안전통화로서 엔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국민은행 WM 스타자문단 한남PB센터 김현섭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