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이 수천개 모이면 생태적 재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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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일회용품이 수천개 모이면 생태적 재앙이 된다 하찮은 존재 아니다…아름답지만 불길한 일회용품이 만든 자연㊤

기사입력2024-01-05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종이컵, 나무젓가락, 비닐봉지, 빨대, 이쑤시개, 화장지, 명함, 포스트잇….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너무 편리해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바로 일회용품.

정부는 일회용품 규제를 하겠다고 카페와 식당 안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같은 일회용품 사용을 막았고,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제한했다. 2022년 일이다. 1년의 계도기간을 거쳐 정착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최근 소상공인에게는 큰 부담이라며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허용했고,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 사용금지 계도기간을 무기한으로 연장했다. 한마디로 일회용품 사용 제한을 철회한 셈이다.

타라 도노반, ‘무제(플라스틱 컵)’, 2006/2018, 플라스틱 컵. <출처=royalacademy.org.uk>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있으면,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과 주문한 음료를 받아 가는 사람을 끊임없이 보게 된다. 한 사람이 하나씩 가져가는 일회용 컵이지만, 그것이 쌓인 컵 더미를 상상하면, 일회용 컵이 만든 쓰나미가 연상된다.

작은 하나의 컵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일회용 컵의 물결. 한 손에 든 한 개의 컵만으로는 볼 수 없는 쓰나미. 상상으로 떠올렸던 일회용 컵의 거대한 물결은 타라 도노반(Tara Donovan, 1969~)의 ‘무제(플라스틱 컵)[Untitled(Plastic cups)]’(2006)을 통해 현실에 재현된다.

‘무제(플라스틱 컵)’은 수천 개의 반투명 플라스틱 컵을 쌓아 만든 거대한 설치작품이다. 이 작업을 보고 어떤 이는 파도 치는 바다를 상상하고, 다른 이는 빙하 풍경을 닮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구름 같다고 하고, 초원의 언덕처럼 보인다고 하는 이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쉽게 쓰고 버리는 인공물질 수천 개가 모여 자연의 풍경과 닮은 형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타라 도노반, ‘무제(플라스틱 컵)’, 2006/2018, 플라스틱 컵. <출처=royalacademy.org.uk>

이 작업을 보면서 이중의 감정이 든다. 일회용 컵이 지닌 환경파괴의 불길함과 자연 풍광을 보는 듯한 시각적 아름다움. 이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일회용품이 어느 순간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일상 곳곳 점령했음을, 자연처럼 우리의 주변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작업이 대변하는 것일까?

하나일 때는 조잡하고 그 존재가 한없이 가벼운 일회용품이 수천 개 모이면 그 규모만으로도 생태적인 재앙이 되는 것들이다. 절대 하찮은 존재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작품이 치명적이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환영을 불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혹적이다. 마치 일회용품의 문제를 알면서도 그것의 편리함에 매혹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작품에서 자연 풍광을 느끼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작품을 창작한 미국의 미술가 타라 도노반은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단추, 이쑤시개, 종이접시, 핀, 스카치테이프, 카드보드 등 한번 쓰고 버리는 것들을 겹겹이 쌓거나 겹쳐 형상을 만든다. 그는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창의적인 사람에게 주는 ‘천재상’인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을 2008년에 수상했을 정도로, 미술계 안팎에서 인정받는 작가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