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였던 타로 카드…운명을 점치는 도구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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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놀이였던 타로 카드…운명을 점치는 도구가 됐나 표피성의 시대에 세계를 그리기…문주혜 작가

기사입력2024-08-19 17:32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주혜, ‘Dragon and Ten of Swords’, 장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채색, 200×200cm, 2021.

오늘날 쓰이는 타로 카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있다면, 아마도 ‘라이더-웨이트 타로’라는 이름의 카드가 아닐까 싶다. 약 1909년경 제작된 이 카드는 마술과 밀교 지식의 전문가였던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가 설계했고, 파멜라 콜먼 스미스라는 화가가 아르누보풍의 그림을 입혀 완성했다. 벌써 100년 이상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만큼 ‘라이더-웨이트 타로’야말로 타로 카드의 원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알고 보면 타로 카드의 기원은 14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시기의 타로는 점을 치는 도구가 아니라, 단순히 놀이에 쓰이는 트럼프 카드에 가까웠다. 어디선가 이처럼 짧은 이야기를 듣고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쳤던 기억이다. 1430년대에는 놀이에 쓰이던 카드가, 1900년대에 이르러 운명을 점치는 도구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놀이와 운명은 어떤 우연을 거쳐 비로소 서로 얽힐 수 있었을까?

문주혜는 장지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지만, 완성된 작업은 동양화를 떠올리게 만들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 작가가 주로 영향을 받았던 것은 게임과 종교화다. 게임도, 종교화도, 동양화라는 매체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참조점이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을 동양화 혹은 한국화 작가로 여기기보다는 ‘동양화 재료를 사용하는 화가’로 폭넓게 정의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정의는 매체와 형상 간의 어긋남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문주혜, ‘piece of peace’, 장지에 채색, 100×100cm, 2020.

언젠가 문주혜의 그림을 보고는 타로 카드 이미지를 닮아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림 속 정체 모를 형상들이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느낌은 작가가 다름 아닌 게임으로부터 소재를 구했기에 발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작가는 게임에서 쓰이는 ‘필살기’와 그 효과에 관심을 기울인 바 있었다. 게임 속에서 사용되는 화려한 그래픽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장지라는 매체를 이용해 이와 같은 그래픽 효과를 담아냈을 때, 그 결과물은 꽤나 흥미로운 어긋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가가 관심을 가졌던 건 게임 속 시각 효과에 그치지 않았다. 문주혜는 게임이라는 모티브를 그림 위로 옮겨냈을 때, 그 어긋남 속에서 어떠한 서사가 감각될 것이라 여겼다. 게임과 서사라는 두 낱말을 곱씹으며 누군가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슈퍼 마리오’ 시리즈나 ‘테트리스’에서와 같은, 이야기랄 것도 없는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떠올릴지 모른다.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장대한 대서사시에 가까운 이야기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정교한 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프레드릭 제임슨은 후기자본주의 시대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표피성을 꼽았다. 여기서 표피성이란, 겉으로 표현되어야 할 심층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 정동이 약화되고 나아가 해체되어 버린, 말하자면 ‘얄팍해진’ 문화의 상태를 가리킨다. 하위문화의 대표적 사례인 게임은 이러한 표피성을 갖는 매체로 여겨지고는 했다. 숙고하게 만들지 않고 단순히 반응하게 만들며, 성찰하게 만드는 대신 단지 즐거움을 주는 매체가 바로 게임이라는 것이다.

문주혜, ‘무대’, 장지에 채색, 100×100cm, 2022.

그렇지만 다른 종류의 ‘현대적’ 매체와는 다르게, 게임에서는 거대 서사가 공격받지 않고 꾸준히 보존되어 온 역사가 있었던 것 같다.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놓고 영웅들이 벌이는 암투나 주어진 운명과 맞서는 단독자의 이야기와 같은 신화적이고 서사시적인 서사들이 게임 속에서는 굉장히 익숙하게 반복된다. ‘진지한’ 문화를 비평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게임이라는 표피적 매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이, 이 틈새 공간에서는 이제는 상실된 지 오래인 서사시의 골격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주혜의 그림이 게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때, 이 말은 표피성을 갖는 매체 속에서 역설적으로 꾸준하게 간직되어 왔던 모종의 서사와 그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 종교화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작가는 게임을 경유해 종교화에 가까운 어떠한 그림을 시도하고 있다.

단순한 놀이 도구에 불과했던 1430년대의 타로 카드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아주 우연적인 얽힘을 통해 운명을 점치고 미래를 추측할 수 있는 신비로운 도구가 되었듯이, 작가 역시 이와 같은 우연적이고 그만큼이나 중대한 얽힘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