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봐주기 판결로 멀어진 상식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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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로 멀어진 상식과 정의” 또 다시 이재용 회장에 면죄부…‘법원’을 외면한 ‘법원’

기사입력2025-02-17 13:00

김윤진 객원 기자 (jin@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

지난 3일 ‘이재용 불법승계 및 삼성 불법합병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기존에 대법원이나 서울행정법원 등 다른 법원들이 내렸던 판단과 배치되는 판결이다. 법원의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로 사회정의는 멀어졌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부의 오명은 짙어졌다.

주목받은 ‘분식회계’…잘못은 했지만 죄는 아니다?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기 전인 작년 8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또 다른 판결이 나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의 2015년말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는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에피스 콜옵션 부채 평가로 인한 자본잠식을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결과를 정해놓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사건을 사후적으로 모색한 분식회계라는 판단이었다. 만약 콜옵션 부채 평가로 로직스에 자본잠식 및 대규모 손실이 일어난다면 합병 가치 부정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삼성 측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형사 2심에서는 이러한 행정법원의 판단을 외면했다. 정확히는 로직스가 사후 정당화를 위한 회계처리 작성을 했고 그 목적이나 과정이 부적절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니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이는 비정상적인 회계정보 작성의 전형이고, 경제적 실질을 반영한 회계처리란 사건의 발생 순서에 따른 회계처리 작성 목적과 과정이 정당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회사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회계처리 방법을 선택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회계정보를 작성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우리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믿을 수 있는 투명한 회계정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법원이 친재벌적 논리로 사건을 판단하면서 우리 시장의 신뢰성을 저버린 것이다.

대법원 판결과도 어긋난 ‘합병 목적’ 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최서원 뇌물사건’과 ‘이재용 뇌물사건’에서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은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권 강화를 목적으로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이 진행됐으며,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승계작업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었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이 사건 합병은 삼성그룹 지배권 강화와 승계를 위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합병 목적이 ‘합병 시너지’라는, 사업상 필요로 합병이 이루어졌다는 삼성측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에 대한 법원들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같은 사건에 대해 이렇게 한 재판만 판단이 엇갈리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고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 합병의 목적이 이재용 회장의 그룹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박 전 대통령과 이 회장이 목적 없는 뇌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외압을 행사해 실형을 선고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은 이유 없이 괜히 합병에 개입해 감옥에 간 것이다.

합병 목적이 ‘합병 시너지’라는 주장도 궤변이다. 삼성측은 양사의 매출액을 단순 합산한 60조원을 달성하는 것을 ‘합병 시너지’라고 했고, 2심 재판부는 “각자의 매출액을 단순 합산하여 합병 후의 매출액 목표로 설정한 것으로 허위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합병으로 매출에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것은 합병 회사들의 매출을 합산한 것보다 더 큰 매출이 예상될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합병 이후 목표 매출액이 양사의 매출액을 단순 합산한 것이라면 그것은 ‘합병 시너지’가 아니다. 합병을 할 이유가 없다.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로 멀어진 상식과 정의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에 대한 법원들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뇌물공여 판결이 내려졌고, 민사재판에서 부당한 합병비율도 인정됐다. 행정소송에서 분식회계도 인정됐다. 국내 재판은 아니지만, 엘리엇과 메이슨이 제기한 ISDS에서도 한국 정부의 배상이 결정됐다. 그런데 부당한 수단을 동원한 합병은 무죄라고 한다. 아무리 재판의 종류마다 성격이 다르고 법관이 독립적으로 심판한다고 하지만, 같은 사건에 대해 이렇게 한 재판만 판단이 엇갈리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고 수긍하기 어렵다.

법원은 이번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로 시장질서를 교란한 이들에게 면죄부를 줬고, 시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 재건도 요원해졌다. 사법부가 계속 재벌총수의 경제범죄와 자본시장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묵인한다면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외면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더 나아가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다. 대법원 상고심은 반드시 이를 바로잡는 판결로 사회정의와 경제민주주의를 지키길 바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