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바이오 ‘유행’따라 몰리는 벤처투자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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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AI·바이오 ‘유행’따라 몰리는 벤처투자 아닌지 투자 쏠림과 양극화 우려…‘뜨는’ 산업뿐만 아니라 벤처 다양성 필요

기사입력2025-05-21 11:11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올해 1분기 벤처투자는 2조6000억원, 벤처펀드 결성은 3조1000억원에 달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는 전년동기 대비 각각 34%, 20.6% 증가한 수치로 2022년 벤처투자 호황기 이후 가장 높은 실적이다. 위축됐던 시장 분위기에 모처럼 온기가 돌며, 벤처 생태계가 숨을 고를 여유를 찾고 있다는 반가운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의 이면에는 놓쳐선 안 될 부분도 있다. 바로 투자의 쏠림과 양극화 현상이다. 이는 생태계의 균형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분기 벤처투자는 AI와 바이오에 집중됐다. ICT 업종은 전체 벤처투자의 22.4%를, 바이오·의료는 13.8%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각각 19.6%, 11.2% 증가한 수치다. 반면 전통 제조, 콘텐츠, 게임 등의 분야는 2.6~7.3%에 불과해 업종 간 투자 편중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AI와 바이오 같은 ‘뜨는’ 산업뿐만 아니라 신소재, 친환경 제조, 로봇공학, 전통 제조업 등 기술기반 산업 전반이 함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성장 단계별로도 양극화가 감지된다. 7년 이상된 후기 성장기업에 대한 투자가 51.5%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 반면, 3년 이하 초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27.7%에 그쳤다. 회수 가능성과 안정성을 중시한 투자자들의 선택이지만, 벤처 생태계의 다양성과 신진기술의 발굴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투자 건수와 기업 수도 줄었다. 전체 투자금은 늘었지만, 피투자 기업 수는 줄어들며 소수 기업에 대형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초기 스타트업과 후기 기업 간 투자 격차 역시 벌어지고 있다.

물론 투자자 입장에서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이 크고. 수익 회수 전망이 밝은 분야에 자금을 투입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은 2020년대 메타버스, 2010년대 O2O 열풍처럼 ‘유행 따라 몰리는 투자’와 다를 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자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하과 균형을 잡아가기 위한 전략적 분산이다. AI와 바이오 같은 ‘뜨는’ 산업뿐만 아니라 신소재, 친환경 제조, 로봇공학, 전통 제조업 등 기술기반 산업 전반이 함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그것이 한국 벤처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선택과 집중을 넘어서, ‘다양한 산업이 함께 크는 구조’를 설계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해 보인다. 단기성과보다 긴 호흡으로 벤처의 본질인 혁신과 가능성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투자의 훈풍이 조금씩 다시 부는 이때, 벤처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조성해 나갈 전략이 필요하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