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오너·충실 경영인·강한 이사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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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경제일반 “창의적 오너·충실 경영인·강한 이사회 필요” K-기업지배구조,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기사입력2025-07-09 18: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25년 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시작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이 다시 중요한 전환점에 직면해 있다. IMF 당시 도입된 OECD 모범규준에 따라 한국의 대기업들은 순환출자 해소와 지주회사 전환 등을 통해 외형적인 개혁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는 한국 기업가치의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용두 삼일회계법인 고문(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초빙교수)은 삼일PwC가 최근 발간한 ‘거버넌스 포커스-성장과 혁신을 위한 K-기업지배구조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현재 한국의 지배구조는 외형상 선진화되었지만, 실질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며 "영미식 지배구조나 전통적인 재벌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한국 기업 특유의 환경과 경영문화에 맞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크게 두 가지 모델로 나뉜다고 진단한다. 하나는 소유가 분산되어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담당하는 ‘전문경영인체제’, 다른 하나는 지배주주가 경영을 함께 수행하는 ‘오너경영체제’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전문경영인 체제는 이사회 중심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어 지배구조 등급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만, 실제 기업성과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대로 오너경영체제는 창업자의 장기 비전과 의사결정 속도, 과감한 투자 등에서 강점을 지니지만, 일반주주의 이익과 충돌하거나 사익편취, 경영권 남용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북유럽식 ‘재단 기반 지배구조 모델’에 주목

조 교수는 미국·영국식 분산 소유 기반의 지배구조가 반드시 우월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국 GE, 보잉 등의 사례처럼 분산된 지배구조에서는 전문경영인이 분기 단위 실적에 집중하면서 장기적 가치 창출을 소홀히 하는 '단기주의(Short-termism)' 문제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북유럽 기업들이 채택한 ‘재단 기반 지배구조(Foundation Model)’에 주목했다. 스웨덴의 주식시장 시총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 덴마크의 세계적인 운송회사 머스크(Maersk) 그룹, 레고(Lego) 그룹, 최근 비만주사제 개발로 인해 시총이 급격히 증가한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그룹 등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가족경영으로 시작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창업정신과 기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영을 하도록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기업 재단(Industrial Foundation)이 지배주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적은 지분으로도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경영 이익의 일부를 사회 공헌에 사용함으로써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조 교수는 “재단 지배모델은 기업을 사유물이 아닌 사회적 자산으로 보고, 세대 간 경영철학의 전수를 가능하게 만든다”며 “기업의 장기 투자와 혁신, 사회적 책임까지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형태”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북유럽식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려면 제도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상법상 차등의결권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재단 출연 시 5% 초과 지분에 대해 최대 60%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또한 공익재단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도 공정거래법상 제한돼 있다.

조 교수는 “현행 법체계 하에서는 창업자가 주식을 재단에 출연하고 지배권을 유지할 수 없으며, 반대로 출연하지 않으면 상속세 부담이 기업을 해체 수준으로 몰고 가는 이중 딜레마에 처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 없이는 한국형 기업재단의 정착이 어렵다고 진단하며, 노사정 간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창의적 오너, 충실한 경영인, 강한 이사회’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조 교수는 K-지배구조의 미래를 요약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창의적 오너(Creative Owner) ▲충실한 경영인(Dutiful Manager) ▲강한 이사회(Strong Board)를 제시했다.

‘창의적 오너’란 단순히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기업 비전을 수립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새로운 리더의 모습이다. 그는 특히 한국 대기업들이 3세, 4세 경영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창의적 오너십이야말로 기업가정신을 계승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충실한 경영인’은 오너의 대리인으로서 단순한 관리자가 아닌 책임 있는 경영 파트너를 뜻한다. 그는 “전문경영인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한국 현실에서, 충실한 경영인은 오너의 비전과 주주의 기대를 조율하며 장기적으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강한 이사회’는 단지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넘어, 전략적 인사이트와 위기 대응력을 갖춘 실질적인 의사결정 기구로 기능해야 한다고 조 교수는 제안했다. 그는 “이사회는 외형상의 독립성을 넘어 실제로도 경영에 조언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하며, 특히 ESG 관점에서 이사회의 책임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외국 모델의 단순 이식이 아닌, 자국 경제의 역사와 문화, 제도적 특수성에 기반해 독자적인 진화를 거듭해 왔다”며 “이제는 창의적인 오너십과 충실한 전문경영, 그리고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강한 이사회가 어우러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구조야말로,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성장과 혁신을 견인할 수 있는 K-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