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환경이슈가 아니라 재난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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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기후위기는 환경이슈가 아니라 재난 그 자체다 폭염도 재난…‘선언적 약속’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기사입력2025-08-21 00: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올 여름 폭염은 잔인했다.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올 여름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사람은 3000여명, 이 가운데 20여명이 숨졌다. 입추가 지난 현재까지도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추가 피해자가 발생할까 걱정된다.

극심한 무더위의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된다. 기후로 인한 재난은 폭염뿐만 아니라 산불, 폭우, 가뭄, 태풍, 이상 한파 등 다양한 얼굴로 찾아와 사회적 약자와 위기에 취약한 이들부터 쓰러뜨린다. 폭염은 이제 자연현상이 아니라 재난인 것이다.

국제사회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법과 인권의 문제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유엔 최고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역사적인 권고 의견을 발표했다. 기후변화 협약이 각국에 부과한 엄격한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판단이다. ICJ는 “국제법상 불법 행위의 법적 결과에는 피해 국가에 대한 완전한 배상이 포함될 수 있다”며, 국가 사이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기후 대응을 더 이상 ‘선언적 약속’으로 흘려보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하고, 1.5도 이내로 낮추기로 목표를 세웠다.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년마다 제출하기로 합의했지만, 이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16일자 기사에서, 한국의 에너지 구조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전력의 60% 이상을 석탄·가스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9%에 불과해 OECD 평균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이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LNG 운반선과 발전 인프라를 공급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기후변화 대응을 어렵게 한다.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철강, 조선, 반도체가 산업의 중심을 이루며 화석연료 의존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설비 인허가의 장벽, 노후한 전력망까지 겹쳐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올 여름 폭염, 국제사회의 법적 경고, 그리고 가디언의 비판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선언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잠식할 것이다. 탄소중립은 미래 세대를 위한 약속이 아니라, 이미 현재의 생존 과제가 됐다.

정부는 더 이상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을 허물고, 장기적인 산업구조 개편을 이끌어야 한다. 산업계는 ‘탄소 감축’을 비용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소비와 생활 방식을 바꾸고,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며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