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AI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얻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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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우리는 AI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얻고 있는가 새로운 관계성, 기계와 공동 창작한다는 것에 대하여…수젠 청㊦

기사입력2025-09-24 12:3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수젠 청의 대표작 중 하나인 ‘Drawing Operations Unit: Generation 2(Memory)’(2017)에서는 작가와 로봇 DOUG가 나란히 서서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를 공유하며 동시에 선을 그린다. 작가가 손을 움직이면, 로봇이 즉각 반응해 유사한 동작을 이어서 한다.

◇기계에 의한 새로운 감각=하지만 이 동작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로봇이 그리는 선은 작가의 선을 연장하고 해석하며, 기계 특유의 감각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패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협업 장면은 인간의 움직임이 기계를 통해 또 다른 형태로 피어나는 예술적 순간을 보여준다.

수젠은 최근 더 깊은 차원의 연결을 시도했다. 2025년, 세계경제포럼 연례 회의의 예술 문화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스펙트럴(Spectral)’(2025)은 그의 예술적 실험이 한층 진화한 작업이다. ‘오실레이션 2(Oscillation 2)’라는 부제를 지닌 이 키네틱 설치 작품은 수젠의 뇌파 데이터와 로봇 팔을 연결하여, 작가의 정신 상태에 따라 회화가 생성되는 과정을 시연한다.

수젠 청과 DOUG 들이 펼치는 ‘얽힌 기원들(Entangled Origins)’ 라이브 퍼포먼스, 2022, 런던 아시아 하우스, 길리안 제이슨 갤러리 주최. <출처=https://clotmag.com>

수젠이 명상에 집중하여 알파파가 활성화되면, 로봇은 고요한 움직임으로 캔버스 위를 유영하듯 미끄러지며 유기적인 선들을 그려낸다. 푸른빛으로 물든 공간 속에서, 로봇 팔은 공중에 글을 쓰듯 섬세한 흔적을 남기며, 인간의 정신이 기계 행위로 전환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 과정에서 로봇은 단순한 기계적 도구를 넘어, 작가의 심리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명체처럼 기능하며, 인간-기계 간 감각적 공명을 실현해 낸다.

또 다른 작업인 ‘Process Study – Structure from Motion’에서는 3D 모션 캡처 기술과 ‘가우시안 스플래팅(Gaussian Splatting)’ 기법을 활용하여, 움직임의 흐름 속에서 구조를 추출하고 이를 유령 같은 잔상과 입자 형태로 시각화한다. 이 작품은 불완전한 데이터에서 비롯된 불분명한 윤곽과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시각적 요소로 재현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수젠은 바로 이 불완전성을 예술적 가치로 수용한다. ‘완벽함’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그의 예술관은, 기술의 결함과 디지털 이미지의 허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를 창작의 요소로 끌어올린다.

수젠 청의 작업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기계가 어떻게 함께 느끼고, 함께 창조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예술적 제안이다. 기계는 단지 사람의 도구인가, 아니면 우리와 함께 세계를 인식하는 또 하나의 존재인가? 우리는 AI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얻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가진 감각이 점점 기계화되고 있는가? 수젠의 작업은 이러한 질문의 핵심에 놓여 있다.

수젠 청, DOUG 5세대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 2022. <출처=수젠 청 홈페이지 sougwen.com>

그림은 선으로 그려진다. 그 선은 시간이고, 감정이며, 인간이다. 그 선 위에 이제 로봇의 손을 포갠다. 수젠 청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끝나고, 기계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더 나아가 그의 작업에는 더 깊은 질문들이 웅크리고 있다.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마음에 품을 수 있을까? 기술적 변화의 희망, 약속, 위험, 그리고 두려움을 어떻게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을까?’

수젠의 작업은 단순히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떤 종류의 세상을 AI 기술과 함께 구축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손과 감각이 어떻게 변하고 진화하고 있는지를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한다. 이 성찰 끝에서 우리가 어쩌면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기계를 이해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