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지하로…‘이동의 변화’로 본 ‘도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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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포토·인포그래픽 지상에서 지하로…‘이동의 변화’로 본 ‘도시 성장’ ‘사통팔달’로 거듭난 시민의 발…서울기록원 ‘어느 도시의 탑승록’

기사입력2025-11-12 07:17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서울시가 지나온 ‘이동의 역사’를 앞으로 3년간 전시한다. ©중기이코노미

“당시 서울 지하철 공법은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보통 기초공사로 콘크리트 말뚝을 박는데, 디젤 해머로 직접 때려서 박거든요. 지하철 공사도 마찬가지로 강말뚝을 땅에 박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차량 통행이 없는 한밤중에 주로 공사를 했는데, 주변 주민들이 참기 힘들 정도의 소음이었죠. ‘조금만 참아달라, 이 고비 넘기면 우리가 이용할 편리한 지하철이 생긴다’고 호소를 했죠.”

1970년대 서울시 지하철 건설에 참여했던 설계자 김영수 씨의 아카이브 속 인터뷰 중 일부다. ‘인정’에 호소하며 공사를 이어 나갔던 당시의 문화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카이브 속 그는 ‘1호선 공사 완공은 시민들의 승리’라며 지하철 공사 완료의 공을 서울 시민에 돌렸다.

이처럼, 교통은 도시의 팽창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상황과 경제, 문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이에, 서울기록원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서울의 교통 변천사’를 통해 도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그려냈다. 안내양, 학생버스, 합승택시 시절부터 지하철 개통으로 열린 입체도시의 모습까지 격동의 시절 서울시가 지나온 ‘이동의 역사’를 앞으로 3년간 전시한다.

서울기록원 보존서비스과 최혜주 학예연구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교통이라는 주제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시대상을 보여줄 수 있는 공공 기록물 속 에피소드를 통해 교통의 변화 속 시민들의 삶도 함께 녹여내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90년대 이후 자료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는 교통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산업의 확장에 따라 서울시가 한창 팽창해 가던 50년대부터 80년대 기록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오라이~!” 도시는 달린다

종이 회수권과 금속 토큰은 시민들이 지갑과 주머니에 항상 챙기던 일상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버스카드가 대중화되면서 1999년 버스 토큰 제도는 폐지됐다. ©중기이코노미

10원짜리 ‘만원버스’…‘오라이’ 안내양부터 ‘학생버스’ 달렸다

지금도 여전히 ‘시민의 발’이 돼주고 있는 버스는 70년전 서울 시민에게도 필수적인 교통수단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서울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길은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1963년 종로구를 중심으로 서대문구, 동대문, 마포구, 성북구, 용산구, 성동구, 영등포구에 불과했던 서울은 망우, 천호, 송파, 언주, 관악, 양동, 양서, 오류로 확장해 나갔다.

도시의 확장은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의미했다. 1955년 557대에 불과했던 버스 대수는 1965년 2446대로 급증했고, 1990년 8781대로 최고 인기 교통수단으로 올랐다. 지금은 대수가 매년 줄어들며 쇠퇴하고 있지만, 1960대 당시 서울시는 교통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영버스’ 도입을 추진할 정도로 버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이후, 시영버스는 지하철이 개통한 이후에도 도시의 구석구석을 잇는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랑받았다.

1969년 2월에는 ‘서울시 학생 전용버스’ 운행이 시작되던 해였다. 통학 시간대 학생들의 교통 편의를 위한 정책으로, 20대의 버스가 혼잡한 노선에 배치됐으며,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5원의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혜주 학예연구사는 “학생 전용버스는 지금 재도입해도 괜찮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미래의 꿈나무인 학생들을 배려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게 학교와 집을 연결해 주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 변두리 영세민들이 농작물을 갖고 승차할 수 있도록 시영버스 내부를 개조한 버스도 다녔다”며, ㄷ자로 의자를 배치했던 버스 내부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하지만, 제도 속 부당 거래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했다. 현금보다 저렴해 시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버스 회수권의 차액을 노린 암매상이 성행하던 1960년대에는 회수권 판매를 잠시 중단하던 일도 있었고, 일부 버스 안내양은 회수권, 토큰 등을 뒤로 빼돌리는 ‘삥땅 문화’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합승할까요?”

버스 수급 부족으로 택시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당시 시행됐던 콜택시, 개인택시 정책들을 보여주는 자료. ©중기이코노미

따로, 또 같이…‘택시’로 엿보는 교통 문화

복잡한 도심의 이동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대, 그 틈을 메운 것은 택시였다. 합승택시 제도로 승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이동했고, 1968년에는 국내외 관광객과 시민의 긴급한 교통 이용 목적에 즉시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콜택시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후, 장기간 무사고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택시 개인면허’가 등장했다. 15년 이상 무사고 경력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제도 도입이 추진된 지 10년 후인 1977년이 돼서야 4명의 개인택시 면허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발급될 수 있었다.

이후, 서비스 품질을 높인 모범택시의 등장은 택시 고급화에 일조했다. 1993년에는 모범택시의 차별화를 위해 운전자 복장까지 세세하게 규정했는데, 동복의 경우, 단추는 싱글 3개, 와이셔츠 소재는 순면, 깃폭은 3.5cm로 제한했다. 하의의 띠폭은 2cm, 춘추복은 넥타이폭이 최대 90cm 이하여야 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운 규정이 눈에 띈다.

겹겹이 쌓이며 변화한 도시

교통난, 교통체계 확립 등을 위해 1967년부터 고가도로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이와 함께,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교통으로 등장했던 전차는 ‘느림전차’라는 불명예를 안고, 196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기이코노미

지상에서 지하로…‘올해엔 지하철을 탑시다’

늘어나는 인구의 수를 버텨내지 못하고, 지상은 항상 버스와 승용차로 뒤엉켰다. 이런 지상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내놓은 해답은 지하철이었다. 1974년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잇는 10개의 노선은 교통수단의 변화를 넘어 시민의 일상을 바꾸는 사건이 됐고, 이때, ‘시민의 발, 서울 지하철’이라는 표현이 처음 나왔다고 한다.

특히, 지하철의 개통은 주변 상업지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건설 시, 주요 조건 중 하나도 지하철역이었을 정도로 지하철은 건설사가 건물을 지을 때 주요하게 살펴본 입지 조건 중 하나가 됐다.

‘지하 서울’의 시작

지하철 1호선 설계자 김영수 씨가 당시 지하철 착공 시 기록했던 일지들. 18m에 이르는 지하철 1호선 평면도에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구간의 지역 정보, 도로의 상태, 주변 환경까지 서울의 70년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중기이코노미

하지만, 지하철 공사가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자료에 따르면, 신설동 공사 구간 위로 버스가 버팀보에 걸려 공중에 떠 있었다거나,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공사 구간 안으로 들어와 추락한 사건 등 웃지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다행히 인명사고 없이 조치돼 공사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

서울의 중심부를 지나다보니 지하철 공사와 운행 시 발생하는 진동이 국보 숭례문과 보물 동대문 등 문화유산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문화재관리위원회의 반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지하철 공사 3개월 만에 공사가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최혜주 학예연구사는 “당시 문화재관리위원회와 많은 협의를 거치면서 올바를 공법을 찾아가며 건설을 했다”며 기술적·행정적으로 노력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집으로…“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전시관 한편에는 이런 교통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시민의 추억과 목소리도 전시됐다.

‘마을 버스 운전기사가 불친절하다’, ‘노선변경이 필요하다. 시장님이 한번 우리 동네 마을버스 타보고 느껴봐야 한다’, ‘광흥창 역명이 생소해 이름을 바꿔달라’, ‘지하철역까지 연결되는 버스 노선을 신설해 달라’ 등 다양한 시민들의 제언을 살펴볼 수 있다. 더불어 ‘돌이켜보면 별일 아닌 것에 급했던 지난날’,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 ‘낯선 장소에서 본 익숙한 버스정류장’ 등 바쁜 도시에서도 낭만을 찾는 시민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최혜주 학예연구사는 “교통은 누구나 이용하는 일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교통에도 스토리가 있고, 서울 시민들의 시대상을 엿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이렇게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준 시민들의 탑승록을 모아 SNS나 소책자로 만들어 보존하고, 홍보물로 구현할 아이디어도 짜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