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정치적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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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정치적 성공 물가조절과 같은 조정 역할 중요시…관중(管仲)의 경제정책

기사입력2018-09-17 10:08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관중은 중국 역사에서 첫 상인으로 이름을 올린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좋은 친구라고 알려진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포숙을 속여 이익금을 더 많이 가져가 신의가 없었다고 할 수 있었지만, 뒷날 포숙에게 추천을 받아 제(齊)나라 환공에게 등용되어 제나라를 부국강병(富國强兵)하게 만들었다.

관중이 정치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공자는 관중이 친구에게 신의가 없었기 때문에 군자답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재상에 오른 다음 관중은 부국과 강병 이외에도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저작으로 알려진 ‘관자(管子)’의 첫 장인 ‘목민(牧民)’ 편에는 다음과 같이 그의 경제사상을 기술하고 있다.

“무릇 나라의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사계절의 때를 살피는 것에 힘써 창고를 잘 관리하여야 한다.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멀리 있는 자들이 모여들고 땅이 잘 개간되어 있으면 백성들이 한 곳에 머물러 잘 지내게 된다. 창고 안이 가득하면 예절을 알고, 의식이 충분하면 영예와 욕됨을 알게 된다(凡有地牧民者, 務在四時, 守在倉廪. 國多財, 則遠者來, 地辟擧, 則民留處. 倉廩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관중은 그의 저작으로 알려진 ‘관자(管子)’에서 백성들은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한 다음에야 영예와 치욕을 알듯이 이상적인 도덕의 당위성만을 가지고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고 했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이 대목은 백성들이란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한 다음에야 영예와 치욕을 알듯이 이상적인 도덕의 당위성만을 가지고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도덕 가치는 물질적인 욕구가 해결된 다음에야 실현이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또 그의 책 ‘수지(水地)’ 편에서는 세상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땅과 물의 속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땅은 만물의 본원으로서 모든 생명체가 뿌리를 내려 살고 있는 곳이며, 물은 땅의 혈기로서 사람에게 혈맥이 흐르는 것과 같아서 “물이란 모든 재화를 이루는 근원(水, 具財也)”이라고도 했다.

물이 한결같으면 백성의 마음도 바르고, 물이 맑으면 백성들의 마음도 단순해지는 것이고, 백성의 마음이 단순하면 사악한 행동을 짓지 않으니,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는 따로 백성을 깨우치려 하거나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이 그저 물을 잘 살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자연생태 환경과 물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환경이 인간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관자는 땅과 물의 존재를 중시하고 백성들에게 먹을거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농업에 힘써야 한다는 점을 중시했다. 그런데 백성들이 열심히 노력해 풍년을 이루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고도 했다. 때로는 풍년이 들기도 하고 흉년이 들기도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조정에서는 곡식이 남고 부족할 때를 대비해서 창고의 곡식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관자의 경제사상은 무엇보다도 백성들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농업은 물론 물가의 조절과 같은 조정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농사는 농토가 있는 수풀에서 농기구를 들고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출처=한자연변오백례, 제공=문승용 박사>

만약에 군주가 곡물가격의 조정에 실패하면 부유한 상인들이 그러한 틈새를 이용해서 100배의 이익을 얻어가게 될 것이니, 황금과 화폐의 유통수단을 통한 경제정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서 백성들의 재산이 10배나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관중은 나라 재정의 축적과 물가의 조절 정책이나 상업의 역할 역시 매우 중시한 것이니, 군주가 유통수단을 장악하면 백성들도 역시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정치사상 역시 한 마디로 실용주의적 정치 감각을 중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정치를 잘하고 못하는 관건은 백성의 마음을 잘 사로잡는 감동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목민’ 편에서 “정치가 흥하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따르는 데에 달려 있고, 정치가 망하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거스르는 데에 달려 있다(政之所興, 在順民心, 政之所廢, 在逆民心)”라고 했다. 특히 백성들은 가난하고 천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니, 군주가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관자의 이상 정치는, 논어 ‘자로(子路)’ 편에서 엽공(葉公)이 정치를 어찌 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孔子)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이들은 오게 하는 것이다(近者悅, 遠者來)”라고 했던 것이나, 맹자(孟子)가 인의(仁義)에 바탕을 두어서 임금과 백성들 간의 관계가 아비와 자식 사이와도 같아야 백성들이 임금을 제 부모 대하듯이 할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맹자가 말한 임금과 백성의 관계가 타고난 인륜에 바탕을 둔 필연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을 말한 것이라면, 관자는 어디까지나 현실 정치인의 공리(公利)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 다르다.

또 관자는 “백성들을 먹고 살게 해줄 수 있으면 그들은 왕을 위해서 죽고 자손을 끊기도 한다(能生育之, 則民爲之滅絶)”라고 한 것을 보면, 군주가 백성을 대하는 매우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정치기술을 중시한 점이 그들의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는 군주가 어진 정치를 펴면 백성들이 자연스레 탄복해 군주에게로 모여든다고 한 것인데 비해, 관자의 경우는 군자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을 기쁘게 하거나 몰려들게 하는 정책을 인위적으로라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곡식창고는 가운데에 출입구를 잠가놓고 아래는 출입문의 디딤돌로 받쳐진 모양이다.<출처=한자연변오백례, 제공=문승용 박사>

정치를 잘한다는 것이 백성들의 마음에 잘 따르고 그들을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은 어느 학파에서나 흔히 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자가 말하는 훌륭한 정치의 전제조건은 좀 다르다. 군주가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아가게 해 줄 수 있다면 “백성들은 군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民爲之滅絶)”라고 한 것이다.

공자의 정치 이상이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관중의 경우에는 군주가 진정 백성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편안하게 잘 먹고 살 수 있게 힘쓴다기보다는 그저 백성들을 감동시켜서 그들이 군주를 위해서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가 백성을 자식 대하듯이 하는 사랑에 의한 어진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나라 정치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잘 대해준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군주는 백성들을 정치에 잘 이용할 줄 알아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인간의 이기적인 심성을 정치에 이용해야 한다는 실용적인 정치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정치판에 나서는 대개의 정치인들이 흔히 나라와 국민들을 위한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정치를 하는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