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이유로 한 손배가압류 입법으로 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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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파업 이유로 한 손배가압류 입법으로 금지를” 국제단체 “손해배상 청구는 쟁의행위 참가자 상대로 한 보복 조치”

기사입력2022-08-19 10:08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가 18일 ‘조선업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4회 연속토론회 중 첫번째 토론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투쟁과 손배가압류’를 개최했다. <사진=우원식 의원실>

지난달 50여일 동안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이 타결됐다고는 하나, 사측이 70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노동자의 단체행동에 대해 회사가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며, 수십억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고 억압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가 18일 개최한 ‘조선업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4회 연속토론회 중 첫번째 토론회에서, 송영섭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손배가압류가 노동조합의 단결을 저해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양산함으로써 산업평화를 깨트리는 등 더 이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생계비 지원은 물론이고 정부차원에서의 실태조사조차 진행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대상 손해배상액만 3160억원=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에 따르면, 1989년부터 올해 5월까지 조사된 손해배상액만 3160억2865만원이다.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상당했는데, 손잡고가 수집한 197건(손해배상 185건, 가압류 신청 12건)의 사건기록 중 94.9%(18건)가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해고 폭탄, 구속 폭탄에 이어 손해배상·가압류 폭탄이라는 삼중고와 마주하는 실정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공권력을 통해 파업노동자들을 체포·구속함으로써 노동운동을 탄압했다면, 이제는 법원의 판결로서 가해지는 손배가압류가 신종 노동탄압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송영섭 변호사는 사용자는 고액의 손해배상 및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노조의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노조로 만든 뒤 노조해산을 유도하도록 하고, 주동자에 대해 선별적으로 고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노조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파업 손배가압류 입법적으로 금지를”=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3월24일 대법원은 노동조합법 제3조에도 불구하고, 민사상 배상책임에 면제되는 손해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국한되고,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는 불법행위로, 이로 인해 손해를 입은 사용자는 노동자나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같은 이유로 특수고용노동자의 파업,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상대 파업, 정리해고 반대 파업, 민영화 반대 파업, 노동시장 구조개악 반대 파업 등은 모두 불법화되고 사주가 청구한 가압류에 대해서도 90% 가까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파업의 본질은 부작위이고, 노동자는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결과 발생을 방지해야 할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부작위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는 입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는 손배가압류=UN 산하 국제노동기구인 ILO는 우리나라 노동계의 손배가압류 문제와 관련해, 2017년 6월 이사회 보고서에서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고 적시하며, 노동자 파업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또 2017년 10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는 “손해배상 청구는 쟁의행위 참가 근로자를 상대로 한 보복 조치”라며, “파업권이 효과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파업권 침해에 이르게 되는 행위를 자제하고, 쟁의행위 참가 근로자에 대해 이루어진 보복 조치에 대한 독립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영국에서는 불법행위 소송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상한(최대 25만 파운드, 한화 약 4억원)을 정하고 있고, 프랑스는 노동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탄생한 업무방해죄가 폐지됐다. 또한 일본은 위력업무방해죄가 존재하지만, 노동자 파업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쟁의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배가압류는 국제적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노동탄압적 관행이라는 얘기다.

송 변호사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배가압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권에 대한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입법론적 대안이 필요하고, 기본방향은 헌법상 노동3권의 행사로서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은 손배가압류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법률에서 명확히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19대부터 발의 ‘노란봉투법안’ 통과를=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는 노동권을 보장한 헌법 제33조를 부정하고 있는 손배가압류 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2014년부터 일명 노란봉투법안(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해 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19대 국회 환노위에서 단 한차례 법안 심의가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법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 법은 노조와 노조원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무분별한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막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 단장은 “대우조선하청노조가 농성을 멈추고 교섭은 타결됐지만 천문학적 금액을 앞세운 손해배상과 가압류 청구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며, “대우조선해양 사측이나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불법 파업’이라는 낙인을 찍기에 급급했고, 이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었기에 더불어민주당이 나서 손배소 등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문제점을 주제별로 살펴보게 된 것”이라고, 이번 토론회 취지를 밝혔다.

진성준 을지로위원장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가해지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취지의 노란봉투법이 19·20·21대 국회에서 꾸준히 발의되고 있으나,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고,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 및 노조원에 대한 손배가압류 현황 조차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을 설득해 노조탄압을 목적으로 관행적으로 자행되는 손해배상과 가압류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