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붕괴 앞에 12조원 추경은 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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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민생 붕괴 앞에 12조원 추경은 답이 될 수 없다 추경 규모 전면 재조정하고, 우선순위를 민생 중심으로 전환해야

기사입력2025-04-16 13:00

김은정 객원 기자 (ejcong@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정부는 당초 발표했던 10조원보다 약 2조원 수준 증액한 12조원대의 ‘필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필수 추가경정예산안’은 그 명칭부터 정부의 입장을 여실히 드러낸다. 재정 여력이 부족하니 꼭 필요한 곳에만 제한적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번 추경은 ▲재해·재난 대응, ▲통상·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 세 가지 축이 핵심이다. 겉보기에는 민생과 첨단산업 모두를 포괄하는 균형 잡힌 추경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생보다는 반도체·AI 산업 지원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쏠려 있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은 ‘선택과 집중’이 통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한적이고 방어적인 재정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재정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수 추경’이라더니…가장 중요한 ‘민생 안정’ 부재

현재 우리 사회는 단순한 경기둔화를 넘어선 구조적 민생 위기에 빠져 있다. 소비심리는 전국적으로 위축되고 있으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폐업은 빠르게 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임대료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소상공인들은 버티는 것조차 벅찬 상황이다. 생활고로 긴급복지 상담을 받기도 했던 모녀가 사망하거나, 3~4개월가량 월세와 공과금이 연체된 50대 남성이 반지하에서 숨진 지 수개월 만에 발견되기도 하는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민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단기간의 경기침체가 아닌 장기적이고 만성적인 경제불안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는 ‘필수 추경’이라면서도 이번 추경에 반도체·AI 산업 인프라 투자 등 장기 전략사업을 대거 포함시킨 반면, 정작 생활고 사망, 실업, 복지 사각지대 확대 등 현실의 위기에는 제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체 추경 중 약 4조원 이상이 반도체·AI 중심 산업에 집중 투자되었고, 이는 전체의 1/3 이상에 달한다. 산업 전략으로서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민생 안정’이 추경의 목적이라 한다면, 긴급성과 체감도가 높은 서민경제·복지 분야에 더 많은 직접 지원이 우선돼야 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단순한 경기둔화를 넘어선 구조적 민생 위기에 빠져 있다.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한적이고 방어적인 재정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재정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특히, 긴급복지지원제도 확대, 임대료 직접 보조, 고용유지 보조금 지원과 같은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민생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소상공인 지원도 ‘공공요금 부담경감 크레딧’이나 ‘상생페이백’처럼 간접적·한시적 지원에 그쳐 실질 체감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생존의 기로에 놓인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긴급복지망과 현금성 지원이다. 지금의 추경은 산업 육성에 치우친 나머지, 직접적 민생안정 기능은 뒷전으로 밀려난 구조로 보인다.

긴축과 감세가 약화시킨 재정 여력…민생은 한계에

더욱이 정부는 이번 추경을 10조원 규모로 검토했다가 12조원으로 소폭 증액한 수준에 그쳤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는 정부의 최소 추경 기조를 비판하며, 내수 진작, 복지 확대,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30조원 이상 규모의 확장적 추경을 요구해 왔다. 복합위기 국면에서 재정은 ‘선택’이 아니라 ‘정부의 책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필수’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려 하고 있다.

이번 추경은 윤석열 정부가 줄곧 고수해 온 부자감세와 긴축재정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재벌·고자산가에 대한 감세를 지속해 왔고, 이로 인해 세입 기반이 약화되었다. 이제 그 결과로,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재정 투입 여력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확장 재정을 망설일 것이 아니라, 정작 왜 재정이 취약해졌는지에 대한 구조적 성찰에 나서야 한다.

‘필수 추경’ 아니라 시민의 삶 회복 ‘책임 추경’ 시급

지금은 ‘필수’라는 이름으로 최소한의 대응에 머물 때가 아니다. 민생도 경제도 소극적 처방으로는 지켜낼 수 없다. 최소 30조~40조원 수준의 대규모 추경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재정이 위기 대응의 주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향후 우리 경제회복 속도와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아울러, 추경 확대와 더불어 세입구조 정상화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부자감세 기조를 전환하지 않는 한, 반복되는 세수 결손과 재정 악화는 장기화될 것이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정한 과세와 책임 있는 재정 운영이다. 그리고 정쟁에 매몰된 국회도 민생 중심의 정책 전환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재정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재정은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추경 규모를 전면 재조정하고, 재정의 우선순위를 산업 중심에서 민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시작은 최소한의 ‘필수 추경’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회복시키는 ‘책임 추경’이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