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작품은 호세 머그라비에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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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앤디 워홀 작품은 호세 머그라비에게 물어봐 머그라비 패밀리, 컬렉션 가치 높이기 위해 주문제작·작품 수급량 조절

기사입력2017-03-08 19:48

김현성 객원 기자 (artmanse2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슈퍼컬렉터들은 매년 봄에 열리는 홍콩 아트바젤을 시작으로 스위스 아트바젤,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미술품 경매시장을 누비고 다닌다. 만약 엄숙함과 긴장감을 자아내는 뉴욕의 소더비 이브닝 경매장 한쪽에서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입고 심지어 야구모자까지 쓴 채 앉아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는 슈퍼컬렉터 호세 머그라비(Jose Mugrabi)다.

호세 머그라비<출처=artobserved.com>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유한 호세 머그라비는 인상파 작품을 구매하면서 컬렉터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식료품점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평범한 시리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6세 되던 해 삼촌과 함께 콜롬비아로 가 섬유유통업체의 심부름 소년 역할을 했다.

그는 직물 관련 대학에 다니지 않았지만, 사업 수완이 있어 수천 야드의 천을 사고파는 일을 혼자 처리하기도 했다. 사업이 번창하자 경쟁 섬유업체들이 호세 머그라비가 직물세를 내지 않고 불법으로 밀수품을 판매한다고 신고했으나, 콜롬비아는 개혁이 이뤄지기 전까지 오랜 기간 섬유밀수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호세가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

섬유산업에 지친 호세는 하향길을 걷던 직물사업을 접고 1982년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와 자수 의류를 수입해 판매하는 일을 해 다시 한 번 거대한 재산을 축적한다.

◇직물사업가에서 앤디 워홀 소장가로=뉴욕으로 이주한 호세는 자신의 인생을 미술에 바치게 만드는 미술상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를 만난다. 씨티은행에서 아트 어드바이저로 일을 하던 제프리는 호세에게 르느아르 작품은 물론 시슬리, 피사로와 같은 인상주의 작가 작품을 매입하도록 한 사람이다.

그렇게 수집가의 길에 접어선 호세는 본능적으로 현대미술작품에 더 이끌렸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경매장에서 보자마자 마음을 온통 빼앗긴 그는 결국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270만 달러에 낙찰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호세는 앤디 워홀의 회화에 반해 그의 작품 800여점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워홀 소장가로 등극했다. 파크 애비뉴(Park Avenue)의 뉴욕 은행 건물에 5개의 방이 있는 그의 사무실은 자주색 현대식 소파와 갈색 책장 그리고 약간의 펜과 전화가 있는 소박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리바이스(Levi's)는 앤디 워홀 청바지의 새로운 라인을 선보이기 위해 사진촬영을 한다. 미국에서 앤디 워홀과 통하려면 그의 방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Andy Warhol, Nine Jackies, 1964<출처=collection.whitney.org>

앤디 워홀은 1952년부터 1987년까지 약 8000점의 그림과 조각품을 제작했으며, 경매가만 110억달러를 넘는 미술시장의 블루칩이다. 그렇다고 호세의 워홀 작품 수집에 대해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라이벌 컬렉터들은 호세가 작품거래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작품의 수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거나 때론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등의 변칙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그의 태도들이 다른 컬렉터들의 예술작품 수집을 훨씬 더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세는 작가의 가격 수준을 방어하려는 합법적인 노력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호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이유는 최근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재단이 워홀의 많은 작품들을 크리스티 경매에 넘김으로써 호세 머그라비의 컬렉션 가치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컬렉션 프로듀서 알베르토 머그라비=호세 머그라비는 그의 아내인 메리와 함께 맨해튼에 산다. 그의 아이들 중 한 명인 알베르토 머그라비(Alberto Mugrabi)는 아버지의 컬렉션 사업을 이어서 하고 있다. 알베르토는 억만 장자 투자자인 존 제이 조단의 딸 콜비 조던(Colby Jordan)과 결혼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경매현장을 다녔던 알베르토는 더 자극적이고 독특한 젊은 현대미술 작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데이안 허스트가 대표적인데 그의 작품들에서 신성함마저 느낀다며, 수억원의 제작비를 직접 지원하고 작품을 매입하는 컬렉션 프로듀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미술품 투자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본능이 돋보이는 컬렉터에 속한다. 현대미술 컬렉션만큼 훌륭한 투자는 없다고 단언하며, 좋은 작품을 사기만 하면 예술작품은 한계를 두지 않고 오를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머그라비 패밀리는 자신들의 컬렉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시장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잠재력 있는 작가에게 작품을 주문제작하기도 하며, 시장에 나오는 작품 수급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한편 미술품 수집을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는 호세 머그라비는 결코 예술가를 만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의 한 식당에서 앤디 워홀을 발견했지만, 그는 정작 워홀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보다는 자신의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선택에 의존해 성공적인 컬렉션을 이뤘던 것이다. 미술작품을 대하는 컬렉터의 태도와 성향에 대해 호불호가 나뉘기도 하지만, 그들이 미술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는 한 축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