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누구도 사실을 내 입장서 이해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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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지금 중기에선 파산, 누구도 사실을 내 입장서 이해하지 않아 [재기도전 중소기업인 수기] ③-㊦ 적극적인 소명이 필요하다

기사입력2020-03-01 00:00

김남주 객원 기자 (knj.lawyer@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재기도전 중소기업인들의 익명 수기

중소기업의 5년 생존율이 28.5%에 불과하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인이 한번쯤 사업에 실패하지만, 한번의 실패가 있다고 해서 내일의 해가 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좌절을 겪은 중소기업인들을 지원하는 법무법인 도담에서, 중소기업인들(익명) 자신의 경험을 직접 담은 수기를 모았다. [편집자주]

파산과 면책 진행은 내가 고용한 법무법인의 변호사와 법원을 대리하는 관재인 간의 의사소통 및 협업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은, 파산관재인의 어떤 의문에도 나 스스로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재인 의문에 적극 소명…불편한 생활 감내해야

대부분의 기록요청이 과거 사실이기 때문에,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여러 일들의 증거를 찾아내서 자료로 제시해야 했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여러 일들에 대한 일방적인 의문에도 증거를 찾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명해야 할 자료들에 대해, 최대한 공격적인 그리고 적극적인 대응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누구도 사실을 내 입장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결국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파산 기간동안 내 명의의 통장이나 직불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건 개인차가 있는데, 지인 중 파산을 겪었지만, 본인 명의의 통장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제약이 좀 있었다. 휴드폰 요금이나 이동통신 관련 일을 볼 때에도 불편함이 있었다.

파산절차의 진행과 상관없이 채권자나 채권기업의 채무이행 요구 우편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관재인이 내 개인 우편을 관리하지만, 그 와중에도 집으로 날아오는 우편이 있다는 사실에 가끔 많이 놀라기도 했다. 이런 생활 속의 불편함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 운영했다면, 국가대상 부채 정확히 파악할 것

사업체를 운영한 대표가 파산을 하게 되면, 임직원들의 미납 4대보험 납부액과 국세·지방세 등의 부채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 역시 해당 국가대상 부채가 남아 있었고, 당시 해당 법인의 과점주주였기 때문에 일체의 세금을 지분율만큼 내야 했다. 이 세금은 파산과 면책 과정에서 상쇄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4대보험 공단은 대표자의 재무상태나 법적 상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파산관재인의 어떤 의문에도 나 스스로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록요청이 과거 사실이기 때문에,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여러 일들을 증거를 찾아내서 자료로 제시해야 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가서, 파산 면책을 받기 전에 갚아야 할 세금의 정체와 규모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고지서로 받아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파산과 면책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세금은 납부 순위가 일반 채무보다 상위다. 그렇기 때문에 갚아야 할 세금을 먼저 갚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본인의 변호사·관재인과 협의를 해야 한다.

“생산적이지 않더라도 무엇이든 일을 하는 게 좋아”

파산을 신청하고 사건번호가 나오게 된 후에도, 앞으로 면책을 받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채권자 집회(기일)는 짧으면 2개월에 한 번씩, 길면 4개월 후에 기일이 잡히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아르바이트나 소일거리를 한다거나 운동을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그 당시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외부 사람들과의 연락도 하지 않게 되고, 약속도 잘 안 잡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밖으로 다녀야 한다. 자꾸 사람도 만나고 못해 본 경험들도 하고, 한정적이지만 아르바이트 등의 경제활동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매우 유익한 계기가 된다.

초기 투자자(엔젤)는 버거운 상대…충분한 상의를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지인들로부터 투자 혹은 대출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 초기투자인데, 엔젤투자인 셈이다. 절차가 간단하고 인맥으로 대부분 진행되는 것이라,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초기자금을 편하게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지고 파산 등의 상황에 봉착하면, 엔젤 투자자가 투자한 혹은 빌려준 돈을 상환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채권자 집회에 나타나 이의를 제기한다거나, 법적 장치들을 이용해서 재판의 진행을 끄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합법적인 절차로 파산이나 폐업이 진행되지만 특수관계인의 감성적인 부분을 무시하기도 어렵고, 또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친 격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

파산을 진행할 때는 주변에 이런 투자자나 지인이 없는지 생각하고, 충분히 상의 후에 진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된다. 향후 계획을 논의하고 변제방법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새로운 시작 면책…모든 것이 단숨에 해결되지 않아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흘러 마지막 채권자 집회가 끝나고, 채무자를 면책한다는 법원의 판결문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서울회생법원을 나오면서, 다시는 법원 같은 곳은 어떤 일로도 오고 싶지 않다, 오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파산은 종결됐고 면책을 받았지만, 그 기간이 상당한 고통이었다.

그래도, 이제 무언가 새로운 경제활동을 합법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면책을 받고 나면 모든 게 다 자동적으로 예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년간의 파산 기간동안,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인생에 있어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부정적이고, 부분적으로 염세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됐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속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주변 지인들은 그렇게 변한 내 모습에 가끔 놀라기도, 가끔 이해하기도 하는 반응을 보였다. 1년의 파산자 생활이 성격에 그런 면을 더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성격과 성향들이 고쳐지는데, 그리고 원상태로 돌아가는 데에는 누구나 어떤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같이 사업을 하다가 어렵게 된 다른 지인들과도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다들 그렇게 어려운 상황과 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형편이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어려운 시절을 겪게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나도 같은 일을 겪었다. 지인들은 이미 내가 한번 어려움을 겪었고 망해봤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나는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그 과정을 지나왔는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곧 그 모든 일이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도전과 즐거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다. 우리는 노력했고 실패했지만, 또 다시 노력할 것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와 힘을 얻을 계기가 필요했다. 우연히 아는 선배의 소개로, 새롭게 창업을 시작하는 후배 창업자들의 멘토링을 하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몇 년 전의 나처럼 오직 희망 하나만 가지고 빈약한 사업 아이디어와 예산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 창업가들을 보면서, 몇 년 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많은 분들과의 만남 가운데, 조금씩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 계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의 액수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며, 또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 가운데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지인의 도움으로 4대보험이 적용되는 회사에 전문관리자 역할을 하는 자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도, 사업을 다시 시작하지도 못하던 와중이었다. 직장 자체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취직한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이 축하해 주던 기억이 난다.

비록 신용카드는 5년간 만들지 못하고 신용등급도 바닥이지만, 새롭게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적금도 들고 보험도 들고, 세금을 납입하는 급여소득자가 되니 그 처지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정서적인 면에도 안정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을 살면서, 경험했던 사업에서의 여러 강점들이 직장생활에서도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매니징이 쉬운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사업했을 때의 경험에 비하면, 훨씬 그 난이도가 쉽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몇 년 간 사업을 하며 그냥 돈만 까먹고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니었구나, 그 고통스러운 시간 가운데에도 나는 성장하고 있었구나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복기를 시작하다…재도전 진행 중

“난 왜 사업에 실패했을까?”

사업에 실패하고 파산과 면책과정을 지나면서, 정말 자주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파산과정이 진행되면서, 과거는 감히 복기를 시작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제대로 된 복기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그냥 추억으로 생각하고 잊으려고 하기도 했다. 경제생활을 시작하고, 심경적으로 안정이 되니, 예전 과거 사업을 진행하던 당시의 모습을 조금씩 더 객관적으로 회상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첫 사업을 진행하며 어수룩할 수밖에 없었고, 미숙할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게 됐다. 순간순간의 나는 멋질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사업의 시도는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나중에 사업을 다시 하게 될 때 조심하고 피해야 할 것들, 잘 했던 것들은 더 잘해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생각도 떠올렸다. 예전에 그저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시간들을 더욱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좋은 기회를 얻어 멋진 결과를 중간 중간 냈었기에, 파산과 폐업을 할 만큼 회사가 성장했었구나.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사업이 커 나가는 것도 경험하지 못한 채 폐업을 맞이했었겠구나.”

2019년 10월, 다시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비록 예전에 시작했던 것처럼 혼자 법인을 세워 시작했지만, 여러 주변의 도움으로 같은 업종의 큰 회사와 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첫 시작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쯤 되면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려고 할 때마다 항상 생각한다. 그 제발 빨리 끝나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2년간의 고통의 시간들을.

앞으로도 역시 회사를 운영하며, 늘 실패의 순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성공의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실패의 골짜기는 좀 더 쉽게 피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한다.

혹 비슷한 처지를 경험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렵고 좌절스러운 시간을 겪으며,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고,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사회의 무시 그리고 차별에 고통 받고 있을지 안다. 그러나 곧 그 모든 일이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도전과 즐거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다. 우리는 노력했고 실패했지만, 또 다시 노력할 것이다. 힘내시길! [제공=중기이코노미 객원 김남주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