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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경비노동자로 살 수 있는 노동법, 정치권의 책무
착한 머슴을 강요하며, 입주민의 안전·안락을 추구하는 건 죄악
- 기사입력2020-05-14 10:35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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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주민의 폭행에 죽음으로 결백을 토로한 경비노동자 최희석씨. 그의 억울한 죽음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진다. 아파트주민들은 경비실 앞에 분향소를 만들고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민주노총과 많은 노동·인권 단체들도 가해자 처벌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사후약방문이다. 억울한 죽음은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 이런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확약은 어디에서도 보장받기 어렵다. 해서 억울한 죽음에 안타까움보다는, 매번 같은 죽음에 똑같은 추모를 반복하는 우리사회의 노동·인권 불감증에 화가 치민다.
지난 12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한 아이가 고 최희석 경비원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문제로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최희석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사진=뉴시스>2014년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경비원 이만수씨가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여 한달간 투병 끝에 숨졌다. 입주민이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물을 던져주는 등 온갖 막말을 하는 등의 괴롭힘이 원인이었다. 2019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는, 아파트주민이 72세의 경비원을 수차례 폭행해 뇌사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층간소음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폭행 이유였다.억울한 죽음이 있을 때마다 추모와 분노, 처벌과 재발방지 요구가 이어졌지만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그 자리다. 2014년 분신한 이만수씨, 2020년 억울함을 죽음으로 항거한 최희석씨. 그들은 직업은 아파트경비원이었지만, 실상은 아파트주민들의 머슴에 지나지 않았다.최희석씨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는 “머슴한테 가슴을 맞아 넘어져서 망신”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상관없는 진단서를 보내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경비원들의 반복되는 죽음 뒤에는 머슴이길 강요하는 아파트주민들의 그릇된 노동인권 인식이 깔려 있다. 물론 아파트주민 대다수가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경비원에게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물을 던져준 주민이나, 72세 경비원을 뇌사에 이르도록 폭행한 가해자나, 아파트경비원은 입주민을 떠받들어야한다는 선민의식이 화근의 불씨가 됐다.문제는 우리사회가 그릇된 선민의식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경비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외면했고, 정치권 또한 이를 방치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요구에 아파트경비원 대량해고가 발생한다며 최저임금 예외규정을 두자고 강변했던 정치권. 주민들 부담이 늘어난다며 있는 에어컨조차 켜지 말라는 아파트입주민대표자회의. 아파트주민 일부가 경비원을 머슴처럼 생각하는 건, 정치권과 입주민대표자회의 모두 값싼 노동력과 손쉬운 해고를 조장하고 방치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희석씨의 죽음은 후진적 노동인권 정책이 만들어 낸 사회적 타살에 다름 아니다.낙후된 노동인권 의식 뒤에는 값싼 노동, 손쉬운 해고 등 反노동정책이 있다. 노동과 인권을 지켜주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법도 있다. 인원감축이 비용절감의 최우선 고려사항이고, 노동자권익보다는 경비원의 착함과 순종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착한’ 최희석씨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추모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언제까지 억울한 죽음에 향을 살라야하냐 말이다. 머슴이 아니라 경비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노동법. 추모를 넘어서 국민 모두가 정치권에 요구해야 할 일이다.근로기준법에서조차 밀려나 있는 아파트경비원. 똑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한다. 국민의 60%가 거주한다는 아파트. 경비노동자에게 착한 머슴들이 되기를 강요하며, 입주민의 안전과 안락을 추구하는 건 죄악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최희석씨의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