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분해 플라스틱은 위기의 지구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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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생분해 플라스틱은 위기의 지구 구할 수 있을까 물·흙에서 썩는 플라스틱 vs 가격 비싸고, 친환경인지 의문 제기도

기사입력2022-08-22 00:00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페트병, 물티슈, 테이크아웃 커피잔, 빨대, 칫솔, 마스크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일회용 종이컵도 물에 젖지 않도록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에틸렌으로 내부가 코팅되어 있다. 종이 티백도 폴리프로필렌(PP) 코팅 종이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플라스틱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플라스틱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데, 생산과 유통, 분해 및 소각되는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썩어서 없어지기까지 무려 500여년이 걸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022년 5월 발간한 ‘국제사회의 플라스틱 규제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0년 2억3400만 톤에서 2019년 4억6000만톤으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1억5600만 톤에서 3억5300만 톤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9%에 그친다. 사용 후 버려진 플라스틱 중 상당량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바다에 흘러간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물고기와 플랑크톤에 축적된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금처럼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환경과 미래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덩이를 떠넘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플라스틱 수요를 당장 줄이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물이나 흙에 녹거나 썩어서 없어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과연 미래 환경을 지킬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물과 바다에서 썩는 친환경 플라스틱=생분해성 플라스틱이란 식물과 미생물을 원료로 활용해 만든 플라스틱으로, 바이오 플라스틱이라고도 불린다. 기존의 플라스틱과 유사하지만 물이나 흙에서 쉽게 분해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핵심소재에 따라 크게 천연·미생물 계통과 석유 계통으로 나눠볼 수 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는 천연·미생물 계통에 해당하는 PLA와 PHA다.

PLA는 옥수수와 사탕수수, 감자 등에 포함되어 있는 전분이나 당분을 원료로 한 생분해 플라스틱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중에서는 가장 먼저 상업화됐고, 빨대나 칫솔 등 생활용품에 많이 쓰인다. 생산과정에의 온실가스 배출도 기존 플라스틱의 1/4 수준으로 적다. PHA는 미생물이 세포 내에 축적하는 천연 폴리에스터 고분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토양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썩어 없어지며,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발전하는 생분해 플라스틱 개발 기술=생분해 플라스틱 개발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6월 CJ제일제당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과 함께 서해 대부도 연안에서 실험을 진행해 ‘썩어 없어지는 플라스틱’ 실증에 성공했다고 한다.

CJ제일제당이 만든 플라스틱은 PHA다. 땅이나 바닷속에서 최소 6개월, 최대 4년이면 분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은 비결정형 aPHA와 반결정형 scPHA, 곡물 유래 생분해 소재인 PLA 필름을 바닷속에 넣은 뒤 11주 동안 2주 간격으로 무게 변화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실험 결과, aPHA의 무게는 약 57%, scPHA 무게는 약 28% 감소했다. 반면 PLA 필름의 무게는 1.2%만 줄었다. 이로써 PHA가 바닷속에서 잘 분해된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됐다.

플라스틱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지금처럼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환경과 미래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덩이를 떠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물이나 흙에 녹거나 썩어서 없어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생분해 플라스틱이 친환경적인지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CJ제일제당과 KCL은 흙에서 PHA가 분해될 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검증했다. PHA가 절반 이상 생분해된 흙과 PHA가 없는 흙에서 각각 보리와 상추 씨앗을 키우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발아율과 생장 수준에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PHA가 땅 속에서 분해될 때 식물에 해로운 독성물질을 배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바꾸는 미생물을 국내 연구진이 찾아내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7월 국립생물자원관은 고려대·원광대 연구진과 함께 포름산염을 섭취해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하이드록시부티레이트(PHB)를 만드는 미생물 2종을 하천과 저수지에서 찾아내 배양했다고 발표했다.

폴리하이드록시부티레이트는 흙과 바다에서 생분해되는 플라스틱으로, 화장품 용기나 수술용 봉합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를 만드는 미생물이 섭취하는 포름산염은 온실가스와 수소, 산소로 이루어진 액체로, ‘탄소 포집과 활용, 저장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과정에서 생성된 물질이 생분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원료가 되는 셈이다.

한편, LG화학과 GS칼텍스는 친환경 플라스틱 원료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두 회사는 2021년 11월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인 3HP(하이드록시피온산) 양산 기술 개발과 시제품 생산을 위한 공동개발협약(JDA)을 체결했다. 3HP는 바이오 원료인 포도당과 비정제 글리세롤(식물성 오일 유래)의 미생물 발효 공정으로 만드는 친환경 물질이다. 3HP로 만든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미생물에 의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기 때문에 미세 플라스틱과 같은 오염 물질을 남기지 않는다.

◇생분해 플라스틱, 앞으로 가야 할 길은=생분해 플라스틱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ESG 경영, 온실가스 감축 흐름, 지속 가능한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에 발맞춰 시장성이 높다. 과학기술정보협의회(ASTI)의 2021 마켓 인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바이오플라스틱의 세계시장 규모는 2020년 104억6200만 달러에서 연평균 21.7%로 급격히 성장해 2025년에는 279억69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는 2025년 2억9430만 달러로, 한화로는 약 3443억원에 도달해 세계시장의 1%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점차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따라 점점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빨대, 면봉, 식기류 등 10개 제품을 대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해당 품목은 유럽시장에 플라스틱으로 수출할 수 없다. 향후에는 관련 품목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도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생산방식 변경을 염두하는 것이 좋다.

다만 기존의 플라스틱을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장벽이 있다. 가장 큰 관건은 가격이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과 비교해 3배 이상 값이 비싸다. 물론 생분해 플라스틱 개발에 뛰어든 기업들이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만, 일반 플라스틱처럼 가격이 낮아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결국 중소제조업체의 경우 생분해 플라스틱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거나 수출에 제약을 받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중소제조업체에 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편, 생분해 플라스틱이 제조되거나 분해되는 과정이 실제로 친환경적인지 면밀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녹색연합이 2020년 발표한 ‘생분해 플라스틱의 오해와 진실’ 보고서에 따르면, 생분해 플라스틱(PLA)을 만들기 위해 옥수수를 키우는 과정에서 살충제와 비료를 사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환경이 오염된다고 한다. 또한 PLA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해롭다는 우려도 있다.

일부 생분해 플라스틱은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일반 플라스틱처럼 썩지 않고 땅이나 바다에 그대로 남는다. 예를 들어 PLA의 경우, 온도 50~60℃ 이상의 퇴비화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6개월 이상 두었을 때 90% 이상 분해된다. 이를 뒤집어 보면, 다른 조건의 환경에서는 잘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분해 환경에 꼭 맞는 시설이 부족해, 생분해 플라스틱이 일반 쓰레기처럼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경우도 많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실제로 환경에 도움이 되려면 전용 폐기시설과 분리수거 방침 또한 마련돼야 한다.

또한 생분해 플라스틱이라 하더라도 생분해 성분이 100%인 경우가 있고, 절반만 생분해되는 반생분해 제품이 있다. 하지만 현재 유통과정에서는 모두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통칭되는 바람에 ‘그린 워싱’의 우려가 있다. 반생분해 플라스틱은 완전히 썩어서 없어지지 않고 어설프게 썩는 바람에 미세 플라스틱을 양산하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다른 플라스틱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어떤 제품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가 제공돼야 하며,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인증제도 또한 필요하다. 중기이코노미 안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