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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은 단단해야만 하는가…고정관념을 깨다

‘폭신한’ 햄버거는 되고, ‘딱딱한’ 케첩 병은 안 되는 현대미술 

기사입력2023-03-11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캐나다 토론토의 온타리오 미술관 앞에서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했다. “DON’T BURGER UP OUR ART GALLERY”, 해석하면 버거를 미술관에 올리지 말라버거를 미술관에서 소장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 팻말 옆에는 3미터(정확히는 2.7미터)에 육박하는 높이의 거대한 케첩 병이 함께 있었다. 50여명의 시위대는 팻말과 거대한 케첩 병을 들고 미술관 앞에서 항의 행진을 했다. 그리고 시위대는 이 케첩 병을 미술관에 기부했다.

 

버거’, ‘미술관’, ‘소장’, ‘케첩 병’. 이 네 개의 단어를 한자리에서 듣게 될 줄이야. 정말 어색한 조합이다. 버거를 미술관이 소장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은유적인 표현일까? 버거의 소장에 항의하며 등장한 케첩 병은 누가 만들었을까? 버거가 소장되었다고 하니, 미술관에 기부된 케첩 병도 미술관이 받아들였을까?

 

이 사건을 다룬 196724일자 글로브앤메일(Globe & Mail)’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햄버거 작가에게 이 작품을 줘라, 학생들이 미술관에 항의(Give hamburger artist the works, students protest at art gallery)” 19672월 온타리오 미술관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67년 2월4일자 ‘글로브앤메일’의 항의 시위에 관한 기사. <출처=글로브앤메일>
햄버거를 만든 작가와 케첩 병을 만든 학생들=현재 이 버거는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있다. 이 미술관의 카페테리아에서 맛있는 버거를 파는 거냐고? 아니다. 이 버거는 작품이다.

 

바로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선구자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2022)가 만든 초대형 버거 작품 플로우 버거(Floor Burger)’. 지름이 226cm에 두께가 132cm가 될 정도로 거대한 이 버거는 먹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만약 밀가루로 대형 빵을 만들고, 구운 대형 고기패티와 많은 양의 초록빛 야채를 넣어 거인이 먹을 것 같은 진짜 버거를 만들었다면, 아마도 19672월의 항의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썩어 없어졌거나 다 먹어 치웠을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은 항의 시위가 발생하기 5년 전인 1962년 제작된 작업이다. 아크릴 물감으로 칠해진 고무 소재 방수포 천 안에 캔버스, , 신문 등 잡동사니를 넣어 버거 모양을 만든 작품이다. 쉽게 말해서 버거의 모양을 본뜬 초대형 작품이다.

 

원래 제목은 거대한 햄버거(Giant Hamburger)’였다. 그런데 작가가 제목을 플로우 버거로 바꿨고, 온타리오 미술관은 이 작품을 1967124일부터 212일까지 개최된 전시 다인, 올덴버그, 시걸:회화/조각에서 선보였다. 미술관은 이 전시가 진행되고 있던 127일에 뉴욕에 있는 시드니 제니스 갤러리(Sidney Janis Gallery)로부터 2000달러에 이 버거 작품을 구매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구매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햄버거를 본떠서 만든 거대한 햄버거 모형을 미술관에서 소장해야 할 정도로 가치 있다고 보지 않았던 것이다. 항의 시위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이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은 센트럴 테크니컬 학교(Central Technical School)의 미술과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반대문구가 적힌 팻말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햄버거에 어울릴만한 거대한 케첩 병을 만들어 이 버거 작품을 구매한 것에 항의했다. 급기야 거대한 케첩 병을 미술관에 소장품으로 기부했다.

 

클래스 올덴버그, ‘플로우 버거’, 1962, 발포 고무와 판지 상자로 채워진 아크릴 페인트로 채색된 캔버스, 132.1×226.1cm.

 

이 기부는 풍자적인 행위였다. 거대한 햄버거 모형을 소장한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미술관 측이 깨닫게 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온타리오 미술관은 이 케첩 병을 거부했다. “중요하고 독창적인 예술작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미술관의 입장이었다.

 

그들은 뭔가 부드러운 걸로 만들었어야 했다”=사실 미술관은 플로우 버거의 구입이 불러올 논란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팝아트가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의 작업으로, 구매할 당시에도 팝아트는 낯선 예술 형식이었다. 그래서 대중이나 기존 미술계에서는 이 작품을 미술작품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미술관도 이러한 당시의 상황을 인식했던 것 같다. 196724일자 글로브앤메일의 항의 시위를 다룬 기사에 당시 미술관 관장이었던 위드로(William J. Withrow)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실었다. “이 거대한 햄버거는 캐나다·미국 현대미술 작품 구매를 위해 기부받은 특별하게 지정된 기금으로 구매했다. 미술관은 지금까지 미술품 구매를 위해 세금을 한 푼도 쓴 적이 없다.” 플로우 버거구입에 시민이 낸 세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햄버거는 지정된 기금으로 구매했으면서, 기부받은 거대한 케첩 병은 왜 거부했을까? 거대한 햄버거는 되고, 거대한 케첩 병은 왜 안 될까? 거대한 햄버거는 중요하고 독창적인 예술작품이지만, 거대한 케첩 병은 아니다? 언뜻 보면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은 예술적이지만, 이름 없는 학생들 작품은 예술적이지 못하다는 편협한 시각을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술관의 해명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서 올덴버그가 항의 시위에 관해 했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 항의 시위에 자신의 감정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내 작업은 곧 진부해질 것이다. 어쩌면 학생들이 나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즉 학생들이 자신보다 신선하고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967년 ‘다인, 올덴버그, 시걸:회화/조각’ 전시에 ‘플로우 버거’가 전시된 모습. <출처=온타리오 미술관>
하지만 그는 뼈 아픈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들은 뭔가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올덴버그는 학생들에게 케첩 병을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었어야 했다고 조언한 것이다. 어리둥절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바로 이것이 케첩 병을 미술관에서 거부한 중요한 이유다.

 

당시 온타리오 미술관 관장 위드로는 196729일자 토론토 텔레그램(The Toronto Telegram)’에 실린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술관은 역사적인 다양한 전환점을 기록하려고 시도한다. 햄버거는 올덴버그가 부드러운 조각을 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덴버그가 말한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와 당시 관장이 말한 부드러운 조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대한 케첩 병에는 올덴버그가 제시했던 조각의 새로운 방식에 관한 고민이 없었다. 그저 단순하게 크기만 키운 케첩 병이었다. 학생들과 항의자들은 햄버거의 크기만 봤을 뿐 그것의 부드러움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올덴버그가 주목받게 된 것은 일상용품을 예술작품으로 바꿔놓은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조각에 대한 고정 관념을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그는 조각이 단단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변기나 타자기, 바이올린 등 딱딱한 사물을 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을 선보였다. 조각에 대한 관념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크기만 큰 케첩 병과 올덴버그의 버거는 다르다. 미술관이 기부한 거대한 케첩 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실 클래스 올덴버그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작가는 아니다. 그는 광화문 광장 인근의 청계광장 입구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다슬기 형상의 공공조형물 스프링(Spring, 2006)’을 제작한 작가다. 이 작품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언젠가 이 작품의 뒷이야기도 해야겠다. 미술작품의 뒷이야기는 미술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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