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스크롤링…디지털 플랫폼이 우리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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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둠스크롤링…디지털 플랫폼이 우리 이용한다 사진가 문형조…불가능한 사진의 행복 회로

기사입력2023-04-21 00:00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어느 날 아침, 스마트폰이 내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스크린 타임이 무려 6시간을 기록했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스크린 타임이란 스마트폰의 평균 사용시간을 말한다. 6시간. 귀중한 하루 24시간 중 무려 6시간이었다. 나는 곧바로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만일 ‘시간 낭비’의 역사를 쓸 수 있다면, 스마트폰의 등장은 그 역사에서 혁명적인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시간 낭비’를 자본화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더 오랫동안 체류하게끔 유도하는 유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했다.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콘텐츠를 즐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디지털 플랫폼이 우리를 이용하며, 콘텐츠가 우리의 시간을 추출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시간 낭비’와 그 경향을 가리키는 특징적인 단어가 있다. 이른바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이다. 둠스크롤링이란, 인터넷을 떠도는 부정적인 뉴스를 쉬지 않고 섭취하는 중독적 상태를 뜻한다. 이 단어는 2020년을 전후해 널리 알려졌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지구적 확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사적 비극이 다수 발생함에 따라 둠스크롤링 중독자들도 늘어갔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해 10월 벌어졌던 이태원 참사 직후, SNS를 떠도는 사고 이미지에 충격을 받아 밤을 새우고 말았다는 지인들이 떠오른다.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충격적 이미지를 밤새워 보여주며 사용자로부터 행동 데이터를 추출한다. 그 결과, 우리는 더 무감각해지고, 더 무기력해진다.

‘그럼 작가는 뭘 원하는데?’, 피그먼트 프린트, 37.5×50cm, 2021.

작가 문형조의 작업을 보며, 나는 곧바로 둠스크롤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문형조는 사진가다. 그러나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는 SNS 등을 끝없이 스크롤 하며 마주친 이미지를 마구잡이로 수집해 편집하고, 그것을 인화한다. 카메라 없이 사진을 만드는 셈이다. 왜 작가는 카메라를 놓게 되었던 걸까?

문형조는 이제 사진이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사진들을 떠올려보자. 이오지마 섬에서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는 미국 해병대의 사진, 달 표면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사진, 천안문 광장에서 탱크를 가로 막고 선 ‘탱크맨’의 사진. 우리는 이제 하룻밤의 둠스크롤링으로 이 정도의 이미지를 수십 개씩, 아니 수백 개씩 볼 수 있다. 역사의 충격을 감각적으로 아로새겼던 사진은 이제 발생할 수 없다. 문형조가 엄청나게 많은 이미지 사이를 산만하게 노니며 모아 완성한 작업은, 이와 같은 ‘없음’을 증언하고 있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이미지 표면은 반짝거리며, 동시에 무기력하다. 자신의 불가능성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우울에 빠지기는 말기로 하자. 미디어 학자 후텅후이는 저서 ‘디지털 무기력(Digital Lethargy)’에서, 이처럼 보편화된 무기력 상태를 재사유하고자 했다. 그는 무기력한 시간을 버려지는 시간,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발생시킬 수 있는 거대한 잠재성의 시간으로 본다. 둠스크롤링으로 대표되는 현대인의 삶이란, 휴식을 취해야 할 때도 시간을 착취당하는 지속적인 탈진 상태에 시달린다. 우울한 무기력증과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불안함 사이, 쉬지 못하고 진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무기력증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오히려 착취당할 것이 전혀 없는 텅 빈 상태가 될 수 있다. 무기력증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의 착취적 네트워크로부터 단절될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문형조는 자신의 작업이, 일종의 ‘행복 회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무기력하게만 느껴지는 이미지를 편집하고 재생산하지만, 그것을 반복적으로 지속하다 보면, 어쩌면 거기서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도 있으리라 꿈꾸는 것이다. 만일 무기력이 잠재성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면, 문형조의 ‘불가능한’ 사진 역시 세계를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한 잠재적 수단이 될지 모르겠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SNS를 스크롤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 거대한 시간을 모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불가능에서 벗어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