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선 소득주도성장론…정부가 자초했다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시험대에 선 소득주도성장론…정부가 자초했다 소득주도성장 폐기·회의론 잠재울 방법은 강력한 재벌개혁 뿐이다

기사입력2018-06-04 17:1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시험대에 올랐다.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은 저임금노동자·가계의 임금·소득을 올려 소비증대→생산확대→소득증가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거다. 그런데 올해 1분기 상위 20%(5분위)의 가계소득은 전년 동기대비 9.3% 증가한 반면 하위 20%(1분위) 가계소득은 8% 하락했다는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나왔다. 5분위와 1분위 간 소득격차가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는 지적과 함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두고 경제지를 필두로 보수언론 대다수는 ‘소득주도성장의 민낯’, ‘예견됐던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로 규정하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중도·진보 성향의 언론 역시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보완책 마련을 촉구해, 문재인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3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계소득 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극우·보수 야당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공세에 가세,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의 핵심에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환상, 허구, 거짓말이 자리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이 나라가 베네수엘라로 가고 있다”며 소득주도성장론에 날을 세웠다. 상한가를 기록 중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덕에 순항할 것으로 보였던, 소득주도성장론이 멈칫한 이유가 ‘소득양극화’란 사실이 뼈아프다.

심각한 수준임이 재확인된 소득양극화 원인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1분위 가구의 인구구조 변화로 설명했다.1분위 가구주의 평균연령이 63.4세로 평균(52.7세)보다 10.7세 높고, 70세이상 가구주 비율도 43.2%로 지난해 1분기(36.7%)보다 6.5%p 높아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폭을 키웠다는 것이다.

기재부의 설명에도 소득양극화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이 나섰다. 가구 기준이 아닌 개인 기준으로 분석, 하위 10% 1분위 가구를 제외한 모든 분위(2~10분위)에서 전년 동기대비 소득증가율이 높았다고 해명했다. 홍 수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 증가율은 8.9%, 전년동기(10.8%)보다 1.9%p 하락했다. 가계동향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소득분배 악화의 주요한 원인은 근로자가구가 아닌 자영업자 소득이 줄었다는 얘기다.

홍 수석의 해명이 사실인 경우에도 자영업자 소득이 감소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공세를 극우·보수 야당과 보수언론이 상당기간 이어갈 빌미를 정부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또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소득 및 자산 양극화를 단시간내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회의론이 보다 확산되는건 시간문제다. 문재인 정부 지난 1년, 최저임금 ‘정상화’ 수순을 밟아가면서 그에 대한 정당성을 옹호·방어하는 소극적인 정책만으로는,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될 뿐이라는게 확인됐다.

계층간 소득 및 자산 양극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하고 실현가능한 방법은 재벌개혁 뿐이다. 시장권력을 재벌기업이 독점하는 산업생태계에선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소상공인에게 적정이윤은 보장될 수 없다.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임금지불 여력을 보전해주지 못한다면, 대·중기업 간 양극화는 물론이고 계층간 양극화 추세도 멈춰 세울 수 없다. 정부 1년예산의 두배가 넘는 1000조원가량 된다는 재벌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시장으로 끌어낼 유일한 방법도 재벌개혁이다.

재벌개혁을 국가 어젠다로 설정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 재벌개혁은 어디까지 갔나? 하도급·가맹·유통 분야에서 중소상공인 보호, 대기업의 지배구조개선 등의 일부 긍정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재벌개혁의 성과라고 칭하기엔 턱없이 미흡하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 ‘시장과정부연구센터’가 경실련의 전문가 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역대 정부에 비해 개혁성은 있지만,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응답(53%)이 가장 많았다. 재벌개혁 정책에 가장 필요한 점에 대해서도 ‘구체적 계획 및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의 확보(52%)’라고 응답이 가장 높았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변죽만 울렸고, 실효성을 담보할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낙제점에 가까운 전문가들의 평가는 실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와도 일치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월에서 3월까지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제조업체 504개사를 대상으로 한 ‘중소제조업 납품단가 반영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이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영여건은 더 악화됐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재료비·노무비·경비 등 제조원가 상승률은 46.7%에서 전년(48.3%)대비 1.6%p 올라간 반면 납품단가가 인상됐다고 응답한 업체는 12.9%로 전년(20.1%)대비 7.2%p 감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필두도 정부가 하도급거래 분야에서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근절에 전력투구하는 와중에도, 하도급업체 사정은 더 나빠졌다는 얘기다.

아직 늦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을 다시 원궤도에 올리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재벌개혁에 대한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 대기업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을 확대하면, 재벌기업 내부에서 돌았던 일감은 중소기업으로 내려간다. 공정거래위원장의 결단으로 공정거래법 시행령만 개정하면, 중소기업의 경영여건이 좋아지면서 재직하는 노동자의 임금 또한 올라갈 수 있다. 정부가 재벌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추진할 수 있는 재벌개혁 방안은 널렸다.

입법을 이유로 여소야대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당장 실현가능한 재벌개혁을 미루는 동안 중소기업의 경영여건은 더 악화될 뿐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소득을 보전해 줄 입법 이외 행정적 조치를 과감하게 단행하지 않는다면,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극우·보수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는 더 강화될 뿐이다. 소득주도성장 폐기론 또는 회의론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벌개혁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는 길 뿐이다.